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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나 문화,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황금 문화의 온상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6. 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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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태가 기원전 4천500년 무렵이라면 믿기는가?

 
바르나 문화 THE VARNA CULTURE

고고학 연구에 따르면 기원전 6천년대 내지 5천년대에 발칸 반도에는 부족들이 거주하며 점차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했다. 

이 지역 기후는 범람원과 관개 농업 발달에 적합했다.

가축 사육자에게 충분한 목초지가 제공되었고, 정착형 축산 발전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었다.

흑해(당시에는 담수호였다)의 편리한 해안인 강 계곡과 발달된 관개 농업, 그리고 정착형 축산 덕분에 여행하는 상인들은 소아시아, 코카서스, 이베리아 반도, 그리고 북부 흑해 연안 주변 부족 및 민족들과 지속적인 접촉을 할 수 있었다.
 



기원전 5천년대 무렵에는 깨끗한 식수가 있는 지역과 삼림 지대에 영구 정착지가 건설되었고, 이로 인해 발칸 반도는 당시 유럽에서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다.

현재까지 이 시대 정착지가 약 950곳 발견되었다.

영구 정착지 근처에는 임시 정착지도 생겨났는데, 몇 세대 동안만 지속되거나 지역 자원이 고갈될 때까지만 지속되었다.

이렇게 오래 지속된 정착지는 수공예와 무역이 발달한 요새화한 공동체 중심지로 성장했다.

발칸반도 문화 공동체 형성의 새로운 원동력은 구리의 발견으로 시작되었다.

발칸반도 동부에서 발견된 구리 광산copper ore mines 연구에 따르면, 현재 스타라자고라Stara Zagora 지역에 있는 가장 큰 광산 중 하나에서 기원전 4천 년대에 약 2,000톤 순수 구리가 채굴되었다.

구리와 함께 인간은 금도 알게 되었다.
 

 
두 금속 모두 자연적으로 자생하고 저온에서 녹으며 가공하기 쉽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두 금속 모두 주로 장식용으로 사용되었지만, 광석이 대량으로 가공되기 시작하면서 구리는 점차 돌과 부싯돌 도구를 대체했다.

처음부터 금은 따뜻한 색과 특별한 광채 때문에 태양과 연관되었고 인간 사회에서 최고의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기원전 6천 년대 내지 5천년대 기간, 지금의 불가리아 바르나Varna 도시 주변 지역은 다음과 같은 여러 요인으로 정착지 건설과 발전에 특히 유리했다.
 

 
- 땅속 깊이 파고든 조용한 만

- 두 강, 즉 데브냐Devnya 강과 특히 프로바디야 Provadiya 강이 두 고원 사이에 위치하여 폭풍우로부터 자연적으로 보호해 주는 조건

- 관개와 범람원 농업에 이상적인 인근 언덕에서 흘러내리는 수많은 작은 강

- 건축 및 금속 가공에 필요한 목재를 제공한 발칸 산맥 북쪽 경사면 참나무 숲

- 주로 축산업에 종사한 북부 유목민들과의 접촉 지점. 이는 무역과 상품, 사상, 그리고 신앙 교류를 촉진했다.
 

 
이러한 환경들 덕분에 기원전 4천년대와 3천년대 바르나와 주변 호수는 무역, 문화, 공예 중심지로 발전했다.

이와 관련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은 바르나 청동기 시대 네크로폴리스다.

이 네크로폴리스는 1972년 바르나 서부 산업 지대에서 건설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바르나 호수Lake Varna에서 북쪽으로 500m, 시내 중심에서 4km 떨어져 있다.

고고학 발굴은 미하일 라자로프Mihail Lazarov와 이반 이바노프Ivan Ivanov가 지휘했다.
 

 
약 7,500m² 부지에서 294기 무덤이 발견되었는데,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길게 늘어진 매장extended burials(누운 유골supine skeletons), 웅크린 유골crouched skeletons, 유골이 없는 상징적 무덤symbolic graves without skeletons이 그것이다.

매우 부유한 무덤도 있었지만, 유골 근처에 작은 물건만 놓여 있는 무덤도 있었다.

이는 직업 및 사회 계층strata이 명확하게 구분된 고도로 조직된 사회였음을 시사한다.
 



가장 풍부한 무덤 중 하나는 43호 무덤으로,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키가 170cm에 달하는 40~50세 남성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에서는 총 무게 1.5kg에 달하는 금품 990점, 구리와 플린트로 만든 여러 도구, 그리고 도기 그릇들이 발견되었다.

매장된 사람은 지도자나 사제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옷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팔꿈치를 구부린 오른손에는 홀scepter을 쥐고 있었다. 그의 목에는 무게 499g에 달하는 890점 금 구슬이 세 가닥으로 묶여 있었다.

그의 옷, 무릎, 가슴, 그리고 머리에는 금판이 장식되어 있었다.

금장식이 달린 활은 그의 왼쪽에 놓여 있었다.

상징적인 무덤에서는 다양한 사람과 동물 모양 조각상이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36호 무덤에서는 동물 모양 금판 두 개와 금으로 장식한 뿔 달린 동물 머리 30개가 발견되었다.
 
3호와 4호 무덤에는 점토로 만든 사람 머리가 묻혀 있었고 눈, 입, 이마, 귀에 금판이 새겨져 있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매장은 시신을 찾을 수 없거나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사망했을 때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이 묘지에서 3,000점이 넘는 금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총 무게는 6kg에 달한다.

이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은 이 시대의 금 유물을 훨씬 능가하는 양이다.
 


그 외에도 지중해 연체동물 껍질로 만든 장신구, 160점이 넘는 구리 제품(장신구와 도구), 사람 모양 뼈 우상, 돌, 분필chalk[?], 광물로 만든 유물 등이 발견되었다.

완벽하게 연마된 돌 도끼와 최대 40cm 길이 큰 플린트  칼날(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금으로 채색된 양식화한 기하학적 무늬 장식 점토 용기, 다이아몬드에 가까운 경도를 지닌  칼세도니chalcedony 구슬은 뛰어난 장인 정신을 보여준다.

바르나 묘지는 구리석기 시대chalcedony (동석기Copper-Stone 시대)에 속하며 기원전 4천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용 기간은 150~200년 정도다.
 

 
그곳에서 이루어진 발견은 이집트와 근동 지역 발견보다 앞선 것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인류 문명 중 하나가 현재의 바르나 지역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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