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의 처녀들, 아프리카 미술이 아닌 중세 교회 미술에서 영감?

새로운 연구에 따르면,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핵심적인 그림이자 모더니즘의 광범위한 확산에 기여한 <아비뇽의 처녀들 Les Demoiselles d’Avignon>(1907)이 많은 미술사학자가 이전에 주장한 것과 같은 아프리카 미술이 아니라, 스페인 피레네 산맥 중세 교회 프레스코화에서 영감을 받았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아트뉴스가 29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이 캔버스는 다섯 나체 여성을 묘사하는데, 개중 일부는 가면을 쓴 것처럼 보인다.
피카소는 입체파Cubism에서 유래한 기법을 활용하여 여성의 신체와 그 뒤 배경을 조각냈다.
1907년 6월 파리 최초의 인류학 박물관 트로카데로 민족지학 박물관(Musée d’Ethnographie du Trocadéro)을 방문한 후 그린 <아비뇽의 처녀들>은 오랫동안 아프리카 미술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간주됐다.
그러나 피카소는 그곳에서 본 아프리카 미술과는 거리를 두려고 했다. "흑인 미술? 잘 모르겠어요." 피카소는 1920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랑스 수집가이자 자칭 "미술 탐정" 알랭 모로Alain Moreau는 왕립 카탈루냐 미술 아카데미 산 조르디 지(Bulletin of the Reial Acadèmia Catalana de Belles Arts Sant Jordi)에 기고한 글에서 피카소가 아프리카 미술과 유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미 "아비뇽의 처녀들"을 완성한 이후라고 주장했다.
모로는 이 작품의 영감을 캄프데바뇰Campdevànol에 있는 라 벨라 데 산 크리스토폴 La Vella de Sant Cristòfol 교회의 지금은 사라진 프레스코화와 페르피냥Perpignan 남쪽 프랑스 피레네 산맥 기슭에 있는 산 마르티 데 페놀라르Sant Martí de Fenollar 교회의 로마네스크 벽화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로는 연구 일환으로 피카소의 여행 경로를 추적했는데, 1906년 스페인 고솔Gósol로 가는 길에 들렀을 가능성도 포함되었다.
친구이자 미술 애호가였던 조안 비달 벤토사Joan Vidal Ventosa는 피카소에게 이 장소들을 방문해 보라고 권했다.
이 그림들은 당시 카탈루냐 지식인 엘리트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얼굴 무늬, 각진 형태, 다채로운 색상 등이 아비뇽의 처녀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모로는 또한 1939년 뉴욕 현대 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회고전에서 아비뇽의 처녀들과 함께 전시된 아프리카 가면이 그림이 완성된 지 거의 30년 후인 1935년이 되어서야 유럽에 전시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당시 큐레이터 알프레드 바Alfred Barr는 이 가면이 작품에 직접적인 영감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예술가들과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아비뇽의 처녀들 영감의 기원에 대해 논쟁을 벌였다.
어떤 이들은 흑인 예술의 노골적인 문화적 도용을 지적하는 반면, 어떤 이들은 의도적으로 수수께끼 같은 특징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모로는 여성의 얼굴 윤곽과 눈 묘사뿐 아니라 색상 팔레트가 카탈루냐 중세 교회 회화를 더욱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한 한 인물의 얼굴에 있는 신비로운 표식인 치림볼로chirimbolo를 언급했는데, 이는 종종 귀, 종양, 또는 팔로 해석된다. 이 표식은 카탈루냐 기독교 미술에서 발견되는 추상적인 얼굴 무늬에서 영감을 얻었다.
***
이 액면대로라면 피카소가 저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는 아프리카 미술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했다는 뜻인데 천만에.
당시 아프리카 미술은 쏟아져 들어왔고, 직접 감상하지 않는다 해도 출판물 형태로 얼마든 접했다.
당시 미술은 우라카이의 시대였다.
돌파구를 찾아 몸부림하던 미술은 피카소 이전 선배들은 일본 미술을 베껴 먹고 나니 더는 참고할 것도 없다 절망할 때 아프리카 미술이 쏟아져 들어왔고 구석기 동굴 벽화들이 문을 열어 제끼기 시작했다.
꼭 내 눈으로 실물을 봐야 한다? 천만에.
더 무서운 건 인쇄매체를 통한 간접경험들이다.
혁신? 하늘 아래 새로운 거 없다.
백남준 말처럼 예술은 사기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