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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소산성 군대 보급기지 있던 곳을 모조리 팠더니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5. 3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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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비 도읍기 기와 다짐 건물이랑 축대 출현

 

이번 17차 전면 발굴을 한눈에 조망하는 배치도다. 이것이 전부다.
위치를 알 만하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부여 부소산성을 계속 파제끼는 중이라 2023년 이래 현재까지 진행한 17차 발굴조사 성과라면서 그 요지를 공개했으니 

사비도읍기 백제 후기 왕궁터로 알려진 관북리 유적 북쪽 부소산에 소재하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쌍북리 678-2임(군창지~영일루 일원)을 대상으로 삼은 이번 조사에서는

부소산성에서 가장 높고 넓은 평탄대지에 자리한 조선시대 군창지軍倉址 동쪽 지점에 대한 전면 발굴조사를 했다.

다 까서 모조리 팠다는 뜻이다.

군창지란 군대 식량보급 창고가 있던 자리라는 뜻이다. 
 

기와 다짐 건물 기초 혹은 담벼락 밑둥이다. 백제가 기와가 남아돌았는지 이 방식을 많이 썼다.
기와 다짐 담벼락이 보인다.

 
그 결과 이 넓은 평탄대지는 경사지고 깊이 패인 계곡부를 인공적으로 평탄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하거니와

간단히 말해 울퉁불퉁한 땅을 메꾸고 깎고 해서 편평하게 운동장처럼 만든 다음에 그짝에 건물도 세우고 했다는 뜻이다.

구체로 보면 3~4m 깊이에 이르는 꺼진 지점은 "흙을 쌓을 때 생기는 밀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둑(토제, 土堤)을 먼저 만들고 위에서 아래로 흙을 한켜한켜 부어 쌓았는데, 이는 백제 한성기 몽촌토성과 풍납토성 축조 때부터 전래된 전통적인 대지조성 방식"이라 한다.

글쎄다 뭐 새로울 것도 없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모조리 같은 높이로 평탄대지를 만들기는 곤란했던지, 3개 계단식 단이 드러났다 한다.

그렇게 만든 평탄대지에다가 굴립주掘立柱 건물과 와적기단瓦積基壇 건물, 기타 저장시설을 배치했으니 특히 첫 번째 대지와 두 번째 대지를 나누는 동서방향 축대는 기와로 쌓아 만든 점(와적축대)이 특징이라 한다.
 

굴립주?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축대를 돌이 아닌 기와로 쌓은 흔적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사례라 하는데

글쎄다 백제시대 사비기를 보면 기와로 다짐한 데는 한두 군데가 아닌데, 굳이 축대라 해서 의미 부여를 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굴립주니 와적기단이니 하는 저딴 왜색 용어 왜 계속 사용하는가?

굴립주?

웃기는 소리 그만들 하시고 그냥 박은 기둥 혹은 박이 기둥이라 하면 된다.

기둥을 땅에다가 그대로 박았다는 뜻이니, 이는 돌을 놓아 받침하는 기둥, 곧 받침 기둥에 대비한 것이니

박은 기둥 혹은 박이 기둥과 같은 누구나 알기 쉬운 말이 있음에도 왜 저딴 거지 같은 말을 계속 쓰는가?

와적기단? 그냥 기와 다짐이라 하면 된다. 

각설하고 와적축대, 곧 기와 다짐 담장은 군창 터 방향 서쪽에서 더 길게 발견될 것으로 보이나

현재로서는 확인된 길이 26m이며, 기와 20여 단을 0.6m 정도 높이로 쌓았으며 출입시설도 확인했다 한다.
 

저장 구덩이라 봤다는데 저 바닥에 기둥을 박았음을 엿본다. 똥통은 아닐 것이다. 똥물을 빼내는 공간이 없다. 저리 좁게 기둥을 박아서 어디다 썼을까? 저장시설 맞을까?


첫 번째 단에서는 백제시대 박은 기둥 건물터와 기와 다짐 건물터, 기타 저장시설이 있으니 이것이 백제 사비기 흔적으로 본다는 뜻 같으며,

그 외에도 통일신라 이래  조선시대에 이르는 여러 건물터가 나왔댄다.

두 번째 단에서는 기와다짐 건물터 2동이 드러났으니 개중 하나는 동서길이 약 14.6m, 남북너비 약 11.5m에 이르는 대형이라 한다.

둥근 받침돌을 건물 바깥기둥(외진주)에 썼고 내부에는 네모 모양 받침돌을 사용했으며 그 받침돌 사이는 기와로 건물 고막이를 설치했다 한다.

고막이란 하인방(기둥 아래를 가로로 연결하는 부재) 아래에 만드는 받침돌 사이 마감시설이라 뭐 이리 복잡한가?

비름빡이다! 
 

기와 다짐 축대 사이로 낸 출입구 시설이라 한다.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부소산성 내부에서 백제시대 대규모 인공으로 만든 대지와 기와 다딤 건물이 운영되었음을 파악함으로써,

해당 지역 일원이 단순한 방어 공간이 아닌 백제 왕궁의 높은 위계 공간이었음을 확인한 의미가 있다고 연구소는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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