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를 파고든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
장기 출타가 코앞이라 되도록이면 운신의 폭을 줄이고자 하지만 가을바람 쐬자는 유혹 떨치지 못하고 친구들과 서울 가까운 곳으로 행차했으니
마침 절을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내가 자주 찾는 서울 인근 곳으로야 수종사와 더불어 매양 보광사를 들거니와,
개중 다들 파주 보광사는 본 적 없다기에 올커니 잘됐다 해서 보광사로 길을 몰았다.
근자 같이 움직이는 멤버는 대학 친구 다섯인데, 꼭 한둘은 빵꾸가 나기 마련이라, 어제도 하나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탈락하고 넷이서 내 차로 움직였다.
보광사만 덜렁 둘러볼 수는 없어 이럴 때마다 내가 매양 파주를 찾는 코스를 찾아들었으니 그 대미는 저 오두산전망대였다.
이 오두산전망대는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라, 한국 두물머리 중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축에 속할 것이다.
어제는 빛이 들지 아니하고 종일 우중충한 날씨였지만, 역시나 오두산은 장관이었다.
이 오두산은 버릴 것이 하나 없다. 낙조면 낙조대로, 우중충이면 우중충한 대로, 시시각각하는 장관을 선물하니 말이다.
다행히 친구들도 다 좋다 연신 탄성을 지르니, 안내한 내가 더 기분이 좋다.
이곳을 오랫만에 들리는 사람, 혹은 처음 오는 사람은 누구나 저 광활한 풍경 앞에 어느 쪽 물줄기가 한강이요, 임진강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고, 또 어드메가 북한땅인지 알 수는 없으니
그에서 내가 조금 아는 체 하는 여지가 생기며 더불어 남한과 북한 국토를 구분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도 설파했으니,
산에 나무가 없으면 북한, 많으면 남한 땅이라는 분별법을 강설했다.
전망대 돌아내려 오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가이드인 듯한 한국 남자 한 명과 대동한 젊은 서양 여식 셋을 마주하게 되었는데,
인터내셔널 오지라퍼인 내가 수작을 걸었더니, 왈, 독일에서 왔다 하거니와, 아는 독일어 몇 마디 하니 와! 하는지라
더욱 신이 나서
알조 슈프라흐 차라투스르라 Also sprach Zarathustra 하니 다시금 와! 하는지라,
내친 김에 바이에른 뮌헨 광팬(웃기는 소리 나는 아스널 모태신앙이지 뮌헨은 안중에도 없다!)이라 블라블라하는데,
영어가 나보다 더더욱 능숙한 해외특례입학 공수호라는 친구놈이 오랜기간 뮌헨을 기반으로 삼는 국제 재보험회사 출신이라,
나보다 서너술 더 떠서는 블라블라 뮌헨 어디냐? 난 뮌헨 어느 거리를 좋아한다 블라블라
한바탕 꺄르륵 배꼽 나가라 웃으며 내려와서는 아우프비더제엔 하고선 헤어지는데 왜 이리 억울한가.
그 파주행에 빠뜨릴 수 없는 데가 이곳 용미리 쌍석불이라, 얼마전 이곳을 다녀온 지인이 등반 금지라 했다 하거니와,
마침 내 형편이 다리를 심하게 다친 여파로 어차피 오르지도 못할 곳이라 아래서 전면만 감상할 수밖에 없다 하며 들렀지만
정작 부처님 뵈니 오기가 발동해 갖은 악조건 딛고선 몰래 담 타넘고선 기어이 부처님 뒤로 올라 전면을 감상했더랬다.
저 부처님은 일행이 모조리 첫 알현이라, 다들 와! 탄성 일색이었으니, 괜시리 내 어깨가 들썩였다.
그래 이만하면 이번 여행 욕은 안 먹겠다 적이 안심했더랬다.
이제는 환갑을 앞둔 친구들이다. 다들 사연 없는 사람 있겠으며, 모질지 아니한 삶을 산 사람 있겠는가?
나를 포함해 모두가 신세 타령하면 올나이트로도 모자란다.
더 늙어서도 이런저런 자리 함께하며 재미있게 살자 이구동성 한다.
여느새 아버지 엄마 모습으로 변한 우리다.
한 친구가 말한다.
고맙다 미안하다 두 마디만 자주 해도 삶이 달라진다고 말이다.
나 역시 부쩍 근자 들어 더욱 절감하기에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더구나 우리 중에서는 저 말을 가장 자주, 그리고 매양 진심을 담아하는 친구이기에 더 와 닿았다.
딱 한 가지를 붙인다면 제때에 해야 한다 아니겠는가?
고맙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도 때가 있어야 하며, 그 때를 잘 맞추어야지 않겠는가?
고맙다 해야 할 때 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
미안해야 할 때 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
돌이켜 보면 후회투성이다.
내가 해야 할 말이기도 하면서 실은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아니겠는가?
해외특례 입학한 공수호다.
나보다는 1년 먼저 환갑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