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조선왕조실록을 읽다가-사투리와 四土俚[사토리]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0. 10.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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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방언, 지방언어를 '사투리'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도 그랬을까.

"이필·전귀선이 승복하지 않으니, 형신刑訊[형벌로 심문]함이 마땅합니다. 다만 원고元告 전석정의 공사에 의심스러운 점이 많이 있고 또 석정이 바친 언문책에 토리土俚의 말 【속어俗語인 사토리四土俚다.】 이 있으며, 다른 사람은 그 토리의 말을 하지 않는데 석정만이 토리의 말을 합니다. 석정을 다시 힐문하게 하소서." (명종실록 권9, 명종 4년(1549) 6월 23일)


이는 그 전날 전석정이란 인물이 '언문책'을 들고 와서 고변한 일을 두고 올린 계사啓辭다.

여기서 俗語인 '사토리' 또는 '토리의 말'이 나타난다.

아마 당시에도 발음은 사토리 또는 사투리였겠고 그걸 음차로 표기한 것일텐데, 그것이 '俗語'이고, 누구는 하고 누구는 안 했다는 점을 주시할 수 있다.

이는 지금의 관념으로 '사투리'에도 해당되기는 하지만, '비속어'나 '은어'에도 적용할 수 있는 모습이다.

전석정이라는 사람이 갑사甲士, 곧 군인이라고 했으니 욕이나 비속어를 많이 섞어 쓰던 언어습관을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6세기 '사토리'는 방언이라고만 볼 수는 없겠다. (2017년 10월 10일) 

 

*** Editor's Note ***

 

다음 글을 참조하라 

 

사투리 쓴다 차별한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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