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는 남기고 죽어야, 박수만 칠 수는 없다
나중에 결국은 사기로 들통 나기는 했으나 2004년과 2005년 황우석이 준 충격파는 피상보다 더 심각했으니,
배아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이 발표는 과학계, 특히 의료계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의학이 아닌 수의학이?
이 공포감 말이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
겉으로 보기엔 환영 일색이나 이를 몹시도 쓰리게 바라볼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한국 문화계가 이룩한 성과는 계속 이야기하지만 전인미답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성과 천지였으니
빌보드 차트 정복을 필두로 칸영화제, 오스카상에 미나리 돌풍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그 성과 하나하나는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세계를 씹어먹은 이런 대성공을 우리는 환호하나, 모두가 아니라는 점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나는 계속 시샘 질투를 이야기하지만, 박수는 박수고, 분노를 이야기하거니와,
남의 성공에 하염없는 박수를 보내는 일 만큼 멍청한 일 없다.
꼭 그 분야가 아니라도 적어도 내가 몸담은 분야에서는 저런 영광을 한 번쯤 누려봐야지 않겠는가?
나는 애초 능력이 안 되니깐 언감생심?
이딴 게 어디있단 말인가?
저런 눈부신 성과를 이룩한 저들만 해도 저들이 그 분야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그네가 저리 눈부신 성공을 거둘지 알았겠는가?
아무도 몰랐고 그들 자신도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한 일이다.
어쩌다 보니, 운이 좋아 그리 된 것일 수도 있고 피땀 어린 노력이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글쎄다, 그 분야 피땀 저 정도 흘린 사람 쌔고쌨다.
한데 저들은 상찬받고 그들을 향해 박수만 치는 나는 왜 이 꼬라진가?
이걸 한 번쯤은 나는 물어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질투하라는 것이고 시샘하라는 것이고 분노하라고 말한다.
내 보기에 노벨문학상은 노벨과학상에 해당하는 분야 종사자들한테는 만감이 교차하는 일이라 본다.
얼마나 부럽겠는가? 얼마나 배가 쓰리겠는가?
딴따라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손가라질 받던 저들이 당당히 세계 주역으로 우뚝 서서 멋지게 수상 연설을 하는 장면,
이를 보고서도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면 그런 분야를 천착하는 연구자 자격이 나는 없다고 본다.
물론 너무 극단으로 몰아부친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왜 이 모양 이 꼬라지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성찰해야 할 것 아닌가?
최치원이 실제로 그랬다.
유명한 고승, 자기 손으로는 저술 하나도 없이 오로지 말빨 세 치 혀로 세상을 농락하며 남들한테 모두 칭송받는 그런 죽은 불교 승려 찬송 비문을 쓰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중국에 유학하기는 대사나 나나 마찬가지인데, 대사는 왜 칭송만 받고 나는 왜 이런 분 찬송문을 쓰느라 이 개고생인가?
세상을 향해 울분을 토로하며 울부짖었다.
그것을 견디다 못하고 마침내 절필을 선언하고는 해인사로 은거하지만, 저 분노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피눈물이 난다.
기왕 사람으로 태어난 마당에 적어도 한 분야에서는 뚜렷한 족적은 남기고 죽어야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