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이 마련한 기이한 특별전
독일인이 수집하고 안봉근이 정리한 제주민속자료들



<탐라국통신>
서울에서, 용인에서, 도쿄에서 거대한 특별전들이 여럿 열리고 있습니다.
거기 다녀온 분들 글도 적잖이 올라옵니다.
당연히 가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이런저런 사정상 날을 잡지 않으면 육지 나들이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으로 육지에서 제주로 오시기도 어렵죠.
특히나 이런 장마철에는요.
앞으로도 썩 보기 드문 전시가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독일 동남부 작센 지역 드레스덴민족학박물관이 소장한 제주 민속품이 근 100년만에 고향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특별전 제목도 <사이, 그- 너머: 백년여정>입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 인류학자나 민속학자에겐 황금의 땅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의 눈과 손으로, 아시아 사람들의 전통적 생활문화유산이 바깥 세상에 나와 '연구'되고 또 '수집'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시기가 제국주의의 시대였던 만큼, 그 학자들의 목적도 썩 순수하진 않았지요.
하지만 그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그들이 수집해간 당대의 일상용품은 오늘날 귀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이 전시에 나온 유물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부부터 보실까요.
이 제주 민속품들은 발터 스퇴츠너란 독일 학자가 1929년 수집한 것들입니다.
그는 1900년대 독일에서 손꼽는 동아시아 전문가였습니다.
1909년 잠깐 들른 이후 20년 만에 온 한국은 일제의 통치에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서양인인 그의 인류학적 조사도 경찰이 대놓고 감시할 정도였지요.
이런 대접에 질린 그는 아예 섬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섬은 감시가 좀 덜하겠거니 하는, 좀 나이브한 생각에서였지요.
이로 인해 그가 제주도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도 일제 경찰은 그를 감시했지만, 스퇴츠너는 그에 굴하지 않고 묵묵히 제주 민속 조사연구를 진행하였죠.
그는 특히 제주 해녀에 매료되었던지 관련된 언급을 자세히 썼는데, "그들과 친해지면 맛있고 영양가 높은 바닷가재를 매일 아침 먹을 수 있을 것이다"란, 경험에서 우러난 듯한 말도 남겼습니다.
한편 그는 제주 사람들이 쓰던 물건을 하나하나 모아들입니다. 어느것 하나 제주를 증언 하지 않는 게
없는, 1백 수십 점에 달하는 물건들을 포장해 배로 목포항까지 날랐습니다.


거기서 기차에 그 물건들을 싣고, 드레스덴에 갑니다. 통일이 되고 러시아 쪽 정세만 안정된다면 지금도 가능하련마는...
이렇게 만리 타향에 온 제주 물건들은 드레스덴 주정부에서 사들였습니다.
1930년의 일인데, 이때가 대공황 시절이고 또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닥쳤던 독일의 사정을 생각하면 놀랍기까지 합니다.
더 놀라운 건 이 민속품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데 한국인이 참여했다는 사실이지요. 그의 이름은 안봉근. 안중근 의사의 사촌동생이었습니다.
2부 전시장엔 그의 일대기와 흔적도 당당히 한 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전시 수준은 결코 낮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담당 연구사가 전시품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제대로 보여주고자 (한계 안에서) 애쓴 흔적이 역력합니다.
전시품 설명을 투명 스티커로 만들어 붙여 알아보기 힘든 점 등은 아쉬우나, 텍스트를 답답하지 않게 보여주려는 고육지책이었겠지 싶습니다.
1부와 2부의 분위기를 아예 다르게 한 것도 그 성격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은 아닙니다.
전시된 유물들 또한 흥미롭습니다. 대다수는 아직도 제주 도내에서 찾아볼 수는 있지만, 이미 삶의 현장이 아니라 박물관에 들어가있는 것들이지요.


게다가 나일론 실이 아닌 갈치 낚싯줄이나 잡초 김을 매는 넓직한 골갱이(호미) 같은 건 이제 제주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것들이 이역만리 독일에, 그것도 상세한 사용설명까지 덧붙어 있었으니 가치가 클 수밖에요.
하지만 이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겹겹이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런 '민속품'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수집한 외국인들에게 '감사'와 '찬사'만 보내는 게 맞는지, 그 시절엔 워낙 흔해서 돈도 안되는 이런 물건을 모으기는커녕 버리기 바빴던 분들을 원망해야 할지, 오늘의 우리는 100년 뒤에 무엇을 남길 수 있을지, 해서 사람 안봉근이 제주에 관한 지식을 어디서 쌓았을지...답이 없을 생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 생각을 하게 한 것만으로도, 이 전시를 다녀온 보람은 있었다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