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멸하는 것은 한국고고학이지 고고학이 아니다
한국고고학을 향해 날선 비판을 계속 하는 날더러 주변에서는 말을 아끼라고 조언하며
같은 말이라도 이쁘게 해야 한다는 주문을 많이 한다.
그 맥락을 내가 모르겠으며, 나라고 이러고 싶겠는가?
그러면서 매양 하는 말이 그렇다 해서 누구처럼 좋은 말만 늘여놓으며
이건 이리 하는 것이 어떤가? 이런 방법도 있으니 이랬으면 좋지 않을까? 한다면
첫째 쳐다보는 놈도 없고 둘째 핫바지로 알아서 약발도 없다.
내가 오랜 기간 경험하면서 축적한 내 나름의 혁파방식이 이것이어니와,
당분간은 그렇게 나갈 생각은 없다,
나이 들어가며 적을 만드는 일은 줄여다 한다지만, 나 같은 미친 놈은 하나쯤은 남아있어야 그래도 훗날 그 시대가 그래도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지 않겠는가?
돌이켜 보면 내가 한국고고학을 향해 이른바 칼날을 본격으로 빼어든 것은 생각보다 연원은 깊지는 않다.
비판은 많이 하기는 했으나 본격으로 나선 시점은 독설고고학을 연재하면서부터다.
남들한테는 이것이 아무런 중요성도 지니지 않겠지만 그때 나는 고고학에서 비로소 벗어났다.
그때 나는 문화부장을 벗어버리고 비로소 고고학에서 몸을 처음으로 뺐다.
이 말이 무슨 뜻이냐 하면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현직이 주는 무게가 그걸 막았다는 뜻이다.
물론 내가 이런다 해서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 잘 안다.
하지만 한국고고학은 김태식 기준으로는 김태식 이전과 이후로 갈라지며,
그 김태식을 좁히면 독설고고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감히 나는 자평한다.
한국고고학회를 나는 호되게 비판했으니 개중 하나가 학보 원문서비스 문제였다.
그걸 막은 저 행태를 나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어 계속 비판했으니, 그 문을 마침내 열어제꼈다.
언젠가는 열었을 것이지만 나는 그 문을 앞당겼다고 자평한다.
김태식이 그리 나서지 않았으면 지금도 문을 걸어잠궈 놓고 있었을 것이다.
나아가 나는 토기 형식론에 치우친 한국고고학을 호되게 비판했으니 그에 된통 얻어걸린 모 국책기관에서는 뒤에서 쑥덕 김태식을 덜먹하며 한편으로는 충격을 먹고,
그 일을 나한테 전한 사람은 차마 그 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보나마나 김태식을 욕하고 했을 것이지만,
나는 내 글이 그들한테 충격을 줬다는 사실 만큼은 자부심을 갖는다.
토기 형식론 토기 변천론 기타 이 따위 지금도 계속은 하고 있지만, 이젠 적어도 그런 걸로 들고 나올 때는 또 김태식한테 얻어터질까봐 염려한다는 그것 자체로 얼마나 의미가 있는가?
이젠 그딴 짓 그만해야 한다. 형식론 분류론 편년론 이제 신물이 난다.
물론 내가 하는 말이 어찌 다 옳을 수 있겠으며 어찌 다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겠는가?
그에는 비약이 들어가며 독단이 있다는 것 잘 안다.
다만 적어도 절반 이상은 다같이 생각해야 하는 병폐라고 본다.
누군가 날더러 고고학을 경멸한다는 말을 한 적 있는데, 한대 줘 패버리고 싶었다.
단군조선 이래 이런 고고학 광신도 김태식 이전에도 없었고 김태식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나는 그만큼 고고학 광신도다.
내가 경멸하는 것은 한국고고학이며, 더욱 구체로는 그 연구방법론과 그 연구시각이지, 고고학 자체가 아니다.
고고학이 여러 학문 분야 중 하나지만, 나는 그 고고학이 할 수 있는 일이 천만가지라 본다.
바로 앞서 나는 고고학이 단순히 발굴조사 연구 집적만이 아니라고 본다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 제반 현상 일체를 고고학적 현상이라 정의하며, 이를 둘러싼 제반 접근 태도 자체를 나는 고고학의 연구 대상 영역으로 본다.
고 했거니와 이게 내가 생각하는 고고학 본령이다.
페이건이 말하는 고고학은 케케묵었다.
그 시대는 이미 진즉에 끝났다.
무슨 고고학이 과거를 붙잡고 그 뒷다리나 뜯어먹는 학문이겠는가?
그건 현재학이요 미래학이다.
그 광대무변을 이리 좁혀놔서야 되겠는가?
그 학문은 저리도 광대무변한데 언제까지 토기 붙잡고 연대 씨름하며 축조기술 타령이란 말인가?
파서 분류하고 분석하는 일이 고고학 본령?
웃기고 자빠졌네.
2024년 12월 3일 로마 테르미니서 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