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풍속도첩을 묻는다] (3)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한 그림


이 그림첩을 소장처인 국립중앙박물관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김홍도의 풍속도하면 바로 이 화첩에 속한 〈씨름〉〈무용〉 〈서당〉이 연상되리만큼 지금까지 이 분야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화첩은 1918년 조한준趙漢俊에게서 구입했고 모두 27점이었으나 1957年 원 화첩의 수미首尾에 위치한 〈군선도群仙圖〉 2점은 별도의 족자로 만들고 풍속도 25점만 새롭게 화첩으로 꾸몄다.
이 화첩에 속한 그림 중 4점이 1934年 간행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게재되었다.
1970年 〈군선도群仙圖〉를 제외한 이 화첩은 《단원풍속도첩檀園風俗圖帖》이란 명칭으로 보물 제527호로 지정되었다.
이 화첩의 게제순은 1)서당, 2) 논갈이, 3) 활쏘기 4) 씨름, 5) 행상, 6) 무동, 7) 기와이기, 8) 대장간, 9) 노상과안, 10) 점괘, 11) 나룻배, 12) 주막, 13) 고누놀이, 14) 빨래터, 15) 우물가, 16) 담배썰기, 17) 자리짜기, 18) 벼타작, 19) 그림감상, 20) 길쌈, 21) 편자박기, 22) 고기잡이, 23) 산행, 24) 점심, 25) 장터길이다.
이들 작품명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각계층의 생업장면과 놀이 등 생활의 이모저모가 잘 나타나 있다.
예외도 없지않으나 대체로 배경을 생략하고 등장인물들이 취하는 자세와 동작만으로 적절한 화면구성을 이루고 있다.
평범한 일상사이나 화가의 따뜻한 시선과 예리한 시각에 의한 순간의 포착은 이를 볼거리로 부각시켜 그림이 그려진 사회분위기를 잘 전한다.
이 화첩에 속한 그림 중 〈점괘〉는 〈시주〉로, 〈고두놀이〉는 〈윷놀이〉로 보기도 한다.
또한 이 화첩에 대한 이와 유사한 그림들이 적지 않게 전해지는 사실, 그림 사이에 기량과 격조에서 차이를 보이는 점, 부분적으로 감지되는 표현의 미숙함, 보수와 加筆 등의 요인으로 이 화첩에 대해 일각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을 보이기도 한다.


편의상 수록 도첩 중 네 장면을 골라봤다.
그냥 무작위로 꼽아봤다.
저들 그림을 관통하는 분모는 "각계층의 생업장면과 놀이 등 생활의 이모저모가 잘 나타나 있다"는 박물관 평가에서 잘 드러난다.
한데 저런 그림들을 왜 김홍도가 그렸을까?
저 어디에서도 그런 의문을 품지도 않았고, 의문이 없으니 답을 탐구하지 않았다.
다만 그와 관련해 아래 논급이 유일하게 단서를 포착할 만하다.
평범한 일상사이나 화가의 따뜻한 시선과 예리한 시각에 의한 순간의 포착은 이를 볼거리로 부각시켜 그림이 그려진 사회분위기를 잘 전한다.
저 장면들, 작성 시점을 기준으로 비록 200년이나 흘렀지만 우리한테는 너무나 익숙하다. 왜?
많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네 일상 풍경이었고, 지금도 저런 풍광 남은 데가 적지 않다.
더 간단히 말해서 저 그림이 포착한 장면들을 소비할 동기가 없다는 사실이다.
조선시대로 돌아가서도, 김홍도 시대로 돌아가서도 마찬가지다.
저 너무나 익숙한 일상을 왜 저리 그림으로 그려야했겠는가?
매양 말하듯이 사람이 세 끼 식사를 한다는 기록 어디에도 없다.
왜?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 당연한 장면들을 왜 저리 구상화했을까?
바로 이에서 우리는 저런 그림 독자는 누구인가를 묻게 된다.
에두를 필요 없다.
저 그림이 포착한 누구나 아는 일상의 장면들, 저것들이 일상이 아닌 단 한 사람이 있었다.
저 그림들이 포착한 백성 혹은 노비 혹은 기생들이 어떤 삶을 사는지는 물론, 그네들이 어찌 생겨먹었는지도 모르는 단 한 사람이 조선왕조에 있었다.
그러니 저 그림은 독자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저들이 일상인 줄 전연 모르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범인이다.
이 범인을 색출하는 일이 왜 중요한가?
그 독자를 밝혀내는 데서 저들 그림이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비로소 폭로되기 때문이다.
저 그림들에는 저의가 있다.
나는 그 이데올로기, 곧 왜 저 그림을 그려야 했는지를 통해 저 그림을 그린 김홍도의 음모를 폭로하고자 한다.
[단원 풍속도첩을 묻는다] (2) 아무도 묻지 않은 독자!
[단원 풍속도첩을 묻는다] (2) 아무도 묻지 않은 독자!
김홍도 풍속도가 담은 장면들을 보면서 의아함이 없는가?도대체 이 그림을 김홍도는 왜 그렸는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는가 말이다. 도대체 저런 그림들을 단원은 왜 그렸을까?이제 우리는 그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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