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 THESIS

백제 은화관식 출토 순창 순화리 석실묘 발굴조사 성과 상세 보고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12. 17. 22:09
반응형



전북 순창군 순화리 석길묘가 백제 은화관식 출토롷 아연 고고학 관심을 받는 중이어니와,

그 발굴성과 좀 더 상세한 자료를 조사단인 문화유산 마을(원장 이영덕)을 통해 입수한


순창 순화리 석실묘 긴급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 자료자료


를 토대로 정리한다.

먼저 위치는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순화리 821번지 일원이라,

정밀조사 구역은 50㎡에 지나지 아니하는 소규모 긴급발굴조사였다.

순창군이 발주한 이 조사는 조사일수가 2024.11.11. ~ 2025.01.09, 실조사일수: 8일이었다. 

2024년 6월, 경지 정리 과정에서 이번 조사에서 드러났지만 석실 덮개돌과 벽체 일부가 훼손하면서 그 토지 소유주가 이를 신고함으로써 존재가 드러났으니  

 



순창군은 현지 조사를 통해 국가유산청에 발견신고를 하는 한편 긴급발굴조사 지원사업을 신청해 문화재위 현장 조사를 통해 이번 정밀 조사를 결정했다. 

조사 지역은 순창군 소재지 서북쪽 금산(해발 433m) 자락에 위치한다. 순창군 중심지와는 멀지 않은 지점이고 군청 기준으로는 북쪽 약 1㎞가량 떨어진 데 있다.

그 금산 남동쪽으로 난 해발 120미터 완만한 언덕 말단에 위치한다.

주변은 대체로 임야와 밭으로 이용한다.

주변에 같은 백제시대 무덤 흔적으로 볼 만한 증거가 있다. 

이미 조사 시작 단계에서 덮개돌을 비롯한 무덤 윗부분은 날아간 상태였으니 무덤방인 현실玄室 위주 조사가 이뤄졌다.





조사 결고 현실은 출입구 시설이 설치된 남단벽 상부가 일부 유실되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남은 상태는 좋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평면 형태는 긴네모꼴 장방형이며, 무덤 구덩이 묘광墓壙 중심부에 맞추어 배치했다. 

벽체를 쌓은 돌은 다듬은 장대석을 이용했다.

덮개돌운 2매가 확인되며 이는 그 내부를 향하는 쪽은 다음었다. 천장은 이른바 평천장. 






북단벽은 총 4단으로 쌓았다. 대형 판돌을 깨서 세로로 쌓아 1~2단을 만든 다음 그 위에 더 작은 판돌로 3~4단을 만들었다.

동· 서쪽 긴 벽체도 비슷한 양상으로 만들었다.

석실은 횡단면이 전형적인 사비시대 석실분인 단면 육각형을 이루지는 못한다.

남단벽 중앙에 문틀식 출입구시설(현문)이 있다.

이는 당연히 그 바깥으로 뻗은 무덤길 연도랑 연결한다.

출입구 양쪽으로 2매 문주석과 하단 문지방석과 상부 문미석이 모두 있다.

출입구 너비는 약 74㎝, 높이는 약 78㎝.

석실 내부 바닥은 다진 흙바탕에 깬 판돌을 깔되 그 사이에는 작은 깬돌을 끼워넣었다.

 



그 위에서 각종 관구와 장신구와 같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방은 사각형 대형 넓적한 돌로 막았다.

나중에 추가로 사람을 묻은 모습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뒤에서 보겠지만 이 무덤은 합장이라, 추가장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무덤길은 무덤방에서 외부로 향할수록 너비가 약간 넓어지며 나팔 모양을 이룬다. 그 덮개돌은 확인되지 않으나, 양쪽 벽체는 확인된다.

 



한국고고학에서는 무덤방 바로 앞쪽 길을 연도羨道라 하고, 다시 그 앞쪽길은 묘도墓道라 해서 구분하는데,

이 구분이 나는 의미가 없다 보지만 암튼, 조사단에서는 땅을 완만한 ‘U’자형으로 파서 묘도를 만들었다고 한다.

석실에서 멀어질수록 급격하게 좁아지는 형태다.

그 묘도 바닥 중앙에는 무덤방 안쪽에서 이어지는 배수로가 있다.

현재 남은 기준으로 묘도는 길이 약 460㎝ 이상, 너비 38~206㎝, 깊이 약 15~60㎝이며, 배수로는 길이 약 884㎝, 너비 약 40㎝ 내외, 깊이 약 2~25㎝.




이 무덤은 도굴 피해를 보지 않아 내부 유물이 혼란되지 않은 양상으로 발견됐다.

다수 목관 관련 유물, 곧 관못과 관고리와 더불어 위세품으로 볼 만한 장신구를 포함한다.

내부에는 2기 목관이 설치된 것으로 파악된다.

관구 배치양상으로 보아 동쪽 관은 길이 약 214㎝, 너비 약 65㎝ 규모로 추정되며, 서쪽 관은 길이 약 199㎝, 너비 약 48㎝의 규모로 추정한다.

 



한편, 동쪽에서서 은화관식과 관모테, 요대 등 위세품 성격을 띠는 장신구류가 출토되었으니 이쪽이 주인이다.

은화관식은 주간부 양끝(정화와 기부)이 유실되었으나, 1단 수지부를 지닌 형식으로 파악된다. 수지부 끝부분에 위치한 봉오리부분(화뢰:花蕾)은 능형 투공이 확인된다.

형태상 특징으로 보아 복암리 3호분 16호 석실의 출토품과 상당히 유사하다. 

관모 테 주변부에서는 섬유 흔적이 일부 확인되기도 한다,

허리띠인 요대는 교구, 교구 연결부, 후미장식의 세 부분이 출토되었으며, 청동으로 제작했다.

교구는 한쪽 변이 타원형으로 돌출된 고리형태이며, 그 끝단 연결구멍을 철제 못으로 연결한 흔적이 확인된다.

교구 연결부와 후미장식의 요대 연결부 후면은 공통적으로 길게 홈이 팬 형태로 확인되었다.
 
순화리 석실은 반지하식으로 만들었으며, 봉토 흔적이 일부 남았음이 확인됐다

 

by 김낙중



무덤방 구조 등으로 보아 사비도읍기 백제시대 무덤으로 판단한다.

은화관식와 요대에서 확인되는 형식으로 보아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남은 상태가 아주 좋고 시기성을 반영하는 형식 및 구조적 특징이 뚜렷하고 편년 가능한 유물이 출토되어 순창지역 고대사 일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순창군 소재지를 중심으로 가까운 지점에 삼국시대 백제에 해당하는 무덤(순화리 석실묘)과 관방유적(홀어미산성)-주거유적(순화리 신기유적)이 분포하는 양상이 확인되며,

특히 순화리 석실묘의 경우 지방관 존재를 추정할 수 있는 은화관식이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순창 지역이 백제 동부지역의 중요한 거점도시 역할을 하였을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