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기를 버려야 고고학 박물관이 산다는 말
아는가?
살아남는 박물관은 토기가 단 한 점도 없다는 사실을?
토기를 쓸어버려야 박물관이 산다.
인민이 토기를 버렸다.
오늘로부터 꼭 2년 전인 2022년 12월 20일, 나는 저와 같이 적었다.
물론 과장법이다.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고 본다.
다만 저것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무엇인지 같이 생각해 볼 문제다.
내가 말하는 고고학박물관은 늘 말하듯이 언제나 고고학도 중심주의다.
고고학도가 좋은 전시, 고고학도를 위한 전시가 판을 친다.
영화나 드라마로 말하면 시청자는 안중에도 없고, 감독 혹은 평론가만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말한다.
물론 그런 작품 중에서도 왜 성공작이 없겠는가?
내가 말하는 토기 중심 전시는 바로 내가 좋은 전시를 말한다.
준비하는 내가, 혹은 준비에 관여한 내가 좋은 전시랑 그것을 일반대중 인민 시민 국민이 좋아하느냐는 별개다.
그 대표가 저 잔뜩한 토기 전시다.
토기를 전시하지 마라는 말이 아니다.
지구상 어느 나라 고고학박물관을 댕겨봐도, 지들만이 아는 전시를 해 놓은 데는 한국이랑 일본 두 나라밖에 없다.
잔뜩 난수표 나열하듯 토기 잔뜩 꺼내 놓고서는 고작 하는 이야기가 토기 변천이라면 누가 그걸 좋아하겠는가?
내가 다녀본 유럽 박물관 어느 도토기 코너도 그런 데가 없다.
다 철저히 기능 중심이다.
이 토기가 도대체 무엇을 하는데 썼고, 그래서 왜 중요한지를 그 시대 문화사와 관련해 설명하지 우리처럼 토기 자체에만 집중해 어떤 기술로 만들었니,
같은 기종이 동시대 지역별로는 어떤 차이가 있니, 또 그것이 시대별로는 어떤 모양으로 변해갔니 하는 식으로 설명하는 데는 단 한 군데도 없다.
내가 말하는 토기를 버려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것이다.
고고학박물관이 사는 길은 오직 내가 좋은 전시를 버리고,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들을 긁어주는 그런 전시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경질무문토기? 회청색경질토기?
그것이 낙랑 영향을 받아 등장했네, 그 직전 청동기시대 무문토기 영향에서 등장했네마네 하는 이야기 하나도 남들한테는 안 중요하다.
그걸로 도대체 무엇을 했으며, 그것이 초래한 사회 변화는 무엇이며, 그것이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이런 걸 설명해 줘야 할 것 아닌가?
내가 맨날맨날 성공한 고고학 박물관으로 전곡선사박물관을 드는 이유가 이것이다.
물론 그쪽 종사자들은 딴 이야기할 지 모르고, 또 나랑 생각이 많이 다르겠지만, 저 박물관이 성공한 이유는 간단하다.
저 전매특허라는 아슐리안 돌도끼를 버리고 보편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인류의 등장과 진화, 그리고 그 맥락에서 지질시대의 전개 양상, 그리고 한반도라는 테두리를 벗어난 보편주의에 입각한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시대 전개를
전곡리를 벗어난 관점, 아니 더욱 정확히는 전곡리를 개중 하나로 놓고선 전개한 보편주의 방식이 성공을 이끌었다고 본다.
지금 이 순간에 지자체를 중심으로 각종 박물관 건립이 우후죽순마냥 추진되거나 이미 건립 중인데,
도입부 구석기 그 다음 신석기 그 다음 청동기, 그 다음 삼국시대 운운하는 이런 편년식 전시 이젠 안 통하고, 아니 정확히는 통한 적이 없다.
이런 전시는 이제는 구시대 유물로 쳐박아 두고선 다른 데에 주안점을 둔 전시들을 획책해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 같은 도토기라 해도 우린 정말로 볼품 없다.
시각성 제로다.
저쪽은 알록달록, 그리고 그 자체 하나하나가 스토리가 있는 데 견주어 우리는 그딴 걸 찾아낼 수도 없어, 그냥 찬장을 채운 의미없는 그릇에 지나지 않는다.
그거 의미 준다고, 신석기 토기 한 점 밑바닥 뒤집어 볍씨 흔적 돋보기 갖다 대어놓고선 우리가 농경을 했네,
신석기에 이미 벼농사를 지었네마네 하는 놀음 이젠 신물이 넘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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