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틀랜타 앞에서 멈춘 발길
아테네 올림픽 스타디움 박물관에 걸린 역대 올림픽 포스터 중에 내가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그것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한 이유는 내가 유일하게 현역 기자로 취재한 대회인 까닭이다.
저때 나는 체육부, 지금은 아마 스포츠부로 이름을 바꾼 그 부서에 있었으니,
부산지사에서 체육부로 전근하자마자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이라는 큰 대회가 있었지만,
나는 신입이라 해서 그 대회는 현지로 가지 못하고 꼴랑 혼자 서울에서 남아 집을 지키는 개 신세였다.
체육부 기자 2년 반 동안 만난 다른 큰 국제대회가 바로 저 올림픽이었으니, 체육부 거의 전 인원이 현지로 투입됐다고 기억한다.
저 특별취재반에는 선발대가 있고 후발대가 있었으니, 나는 당시 김용윤 차장이 이끄는 선발대에 포함되어 먼저 현지로 갔다.
대회기간은 보름 정도인가이니, 나는 28일을 애틀랜타에 있었다.
당시 체육부장은 문영식 선배였을 것이며, 권쾌현 차장은 당시 연수인가 중이었는데 합류했으며,
차장급으로는 훗날 나랑 사이가 아주 틀어지는 이홍기를 포함해 김용윤, 장익상 선배가 있었다.
당시 체육부에는 나보다 바로 한 해 먼저 들어온 김기성 선배가 있었으며, 나보다 언론사 후배로는 김재현 박성제 두 기자가 같이했다고 기억에 난다.
동기 조채희 씨는 그 시점 체육부를 떠난 상태가 아닌가 한다.
당시 취재단에서는 차를 두 대인가 렌트했으니, 운전은 내가 많이 한 편이었다.
아마 물가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데, 취재단 숙소는 매리아호텔이라 해서 시내에서는 꽤 떨어진 외곽에 위치했다. 오가는 길목에 에모리대학이 있었다는 기억이 있다.
올림픽 취재를 빙자한 28일 체류기간이 실은 내가 직접 맛본 미국 본토 경험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미국 본토랑은 연이 없는 편이라, 명색이 영어영문학을 전공했다 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동경? 이런 것이 거의 없었고, 그렇다고 뭐 반미감정이 유별난 것도 아니었다.
재학 중 군 생활은 카투사로 했으니, 이래저리 미국과는 연이 참 질긴 편이라 할 수 있다.
이 애틀랜타 올림픽과 관련한 일화는 서너 번 언급하고 정리하기도 했으므로, 무에 특별히 지금 와서 보탤 기억은 없다.
다만, 유독 역대 옮림픽 중에서는 내가 직접 취재기자로 현장을 누볐다는 점에서 특별히 애착할 수밖에 없다.
저 기간 내내 진짜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만 죽도록 했다. 대회가 끝나고서 딱 하루 휴가를 겸한 집단 나들이가 있었으니, 그 하루만 빼고는 다들 죽자사자 일만 했다.
그때야 몇 달 하루도 못 쉬는 근무가 보통이었을 때라, 한 달 내내 일한다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