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정식 채용하라 발벗고 나선 어느 공무직
기록을 보면 이건무 선생은 2003년 3월 31일 이래 2006년 8월 1일까지 대략 3년 남짓 제8대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했다.
이 시절 이야기 한 토막이다.
그때 공직사회에 이상한 바람이 불었는데, 자료를 찾아봐야겠지만, 채용과 관련해 일대 변화가 있었다.
이 일로 당시 박물관에서 홍보 업무를 전담하던 홍선옥 선생 처지가 실로 곤란해졌다.
이 분 신분이 묘했는데, 간단히 말해서 공무원이라 하지만, 실로 묘한 공무원, 그걸 공직사회에서는 뭐라 하는데, 공무직이든가?
암튼 그렇게 되어서 정식 공무원으로 전환이 시급했다.
홍 선생은 기록상으로 보면 1982년 국립박물관에 입사했지만, 정식 직원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게 발을 디디고선 오직 홍보 업무를 전담하면서 박물관 하면 곧 홍선옥을 연상할 정도였다.
그런 홍 선생이 20년이나 지난 김대중 정부 시절 실로 난처하게 되었으니, 오갈 데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문화재 담당 기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면서 이건무 당시 관장을 찾아갔다.
간단히 말해서 이제는 당신이 힘 좀 써서 홍 선생을 정식 직원으로 채용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이건무 관장 집이 여의도였을 것이다.
이날 나는 무슨 일이 있어 동행하지 못했는데 문화 최영창 동아 이광표는 확실히 갔으며 조선 신형준은 아마 당시 현역이었다면 갔을 것이다.
이건무 관장은 곤혹스러워했다. 이 양반 성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짐작할 것이다.
그런 채용을 하려면 일종의 비상수단 편법이 필요했는데 이건무 선생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나아가 박물관장이 차관급 정무직이라지만 실은 개털이라 모든 인사권은 문체부서 쥐고 흔든다.
다만 이런 박물관장도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인들 못할까?
그 점에서 이건무 관장 처신은 당시 기자들한테 많은 아쉬움을 줬다.
박물관 입성이 무산하자 나는 문화재청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문화재청에 저런 인재가 필요하다 판단한 까닭이다.
그래서 문화재청 대변인실로 꽂자 했다.
당시 대변인 신용한이 이를 위해 비공식 면담까지 했다고 기억한다.
그 사이 변화가 있었는데 문체부에서 올커니 잘됐다 해서 나꿔채갔다.
나중엔 사무관으로 특채까지 되었으니 이리 도와준 사람이 문체부에 여럿이었다.
다만 저리 이른 나이에 황망히 가고 보니 그만큼 일을 잘한다는 게 결국은 건강을 망치게 했으니
아!
말로야 건강이 최고라 하나 그런 절감이 언제나 건강을 망치고 난 다음에서야 깨닫게 되니 문제 아니겠는가?
아무튼 홍선옥 선생은 기자들이 꼭 정식 공무원을 만들어주고픈 그런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