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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9) 삼국유사 부조리를 완벽히 극복한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2. 1.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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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저와 같은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 부조리가 삼국사절요와 동국통감은 어찌 처리되었는가? 

미리 이야기해 둘 것이 있는데, 이건 아마 차후 논할 기회가 있겠지만, 절요와 통감도 실상 다른 사서다.

흔히 말하기로는 절요를 통째로 들어다가 통감 앞부분에 배치했다 하지만, 둘 사이에도 미묘한 차이들이 관찰된다.

다만 사금갑 사건은 두 사서가 같다.

내가 한 글자 한 글자 다 비교한 것은 아니지만 백퍼 같다고 보아 대과가 없다.

절요와 통감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사금갑 사건이 발생한 시점을 아예 비처왕 곧 소지왕 재위 10년 488년 1월 15일, 정월 대보름으로 못박았으니

이 점이 삼국유사의 그것과는 왕청나게 다름을 지적했다.

아무튼 절요와 통감은 정월 15일 사금갑 사건이 있었다고 하면서 그에서 비롯하는 세시풍속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왕비가 승려가 몰래 간통하고 있어 두 사람은 곧 복주되었다) 이때부터 나라 풍속에 정월 보름날에는 찹쌀로 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지냈다.

또 용은 비를 내리고 말은 짐을 실어 날라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멧돼지와 쥐는 곡식을 축내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므로 해마다 그 해 첫달 용·말·돼지·쥐의 날에는 제사를 베풀어 복을 빌고 재앙을 물리쳤다.

그리고 또 온갖 일을 금지하여 서로 놀고 즐거 워하며 신일愼日이라 했다.

방언에 이것을 달도怛忉라 하니 슬퍼하고 근심해서 모든 일을 꺼리어 금한다는 뜻이다. 


어떤가? 

맥락이 전연 성립하지 않는, 다시 말해 부조리로 일관한 삼국유사의 그것과 비교해서 어떤가 말이다.

수준 차이가 너무 나지 않는가?

안 믿기는가? 

이 대목에서 다시 저 대목 삼국유사를 전재한다. 
 
이로부터(사금갑 사건이 있고부터-인용자} 나라 풍습에 해마다 정월 상해일上亥日·상자일上子日·상오일(上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감히 움직이지 않았다.

15일을 오기일烏忌日로 삼아 찰밥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까지 이를 행한다. 

향언鄕言으로 이것을 달도怛忉라고 하니 슬퍼하고 조심하며 모든 일을 금하고 꺼려한다는 것을 말한다.

 

같은 논술을 하고 있음에도 한 쪽은 초등학생 수준이요, 다른 쪽은 노련한 60세 문필가, 혹은 30년 구력 자랑하는 베테랑 기자 수준이다. 

절요와 통감은 어느 곳 하나 맥락이 닿지 않는 데가 없다.

요컨대 수미일관해서 논리가 통한다. 

이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유발하는데, 과연 절요와 통감이 저 사금갑 사건을 기술하면서 삼국유사 사금갑 이야기를 베꼈는가 하는가 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당신들 보기는 어떤가?

삼국유사의 그것을 베낀 것 같은가? 아니면 삼국유사가 본 그 원전(A)이랑 같은 것을 보고 베낀 것인가? 

이제 우리는 등신이 아닌 이상 알게 되었다.

저 사금갑 이야기 원전은 따로 있었고, 그 원전을 삼국유사도 봤고, 절요와 통감 저자들도 봤다.

같이 베꼈는데 삼국유사는 어처구니 없이 마구잡이 생략을 일삼는 바람에 전후맥락에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는 실상 삼국유사 저록 이야기들 전반을 관통하는 문제다.

곧 삼국유사 찬술 수준은 아주 저급하기 짝이 없다.

삼국유사가 민족의 성전? 웃기고 있네.  
 

*** previous article ***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8) 부조리한 삼국유사
https://historylibrary.net/entry/%E3%84%B7-582

[사금갑射琴匣을 심판한다](8) 부조리한 삼국유사

삼국유사 저 사금갑 사건 기술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설날 명절이니 그와 관련한 예를 들어 설명한다.A와 B는 결혼 20년차 부부다. 2025년 어느날 두 사람은 시댁 문제로 대판 싸웠다.결국 둘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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