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토너로 순치된 조선인, 그 슬픈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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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가 없고 그런 까닭에 이용할 마뜩한 교통편도 없어 오로지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전근대 조선인들이 살아남는 방법은 오로지 몸으로 때우기였으니,
이런 민족이 살아남고자 버둥치기 위해서는 죽어나사나 걷거나 달려야 했다.
이른바 줄행랑이 주특기일 수밖에 없으니 조선시대에 마라톤이 있었다면, 요새 에티오피아 같은 아프리카에서 독식하는 마라톤은 조선인이 독식했으리라 본다.
19세기를 살다간 박물학자 이규경李圭景(1788~1863)이 찬술한 방대한 분류식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를 보면 이 이야기가 내가 하는 이야기가 거의 그대로 보인다.
그 경사편經史篇5 논사류論史類2 풍속風俗을 보면 아예 소제목 자체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달리는 데 대한 변증설[東人善走辨證說] 이라는 짧은 글 한 편이 있으니 이렇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먼 거리를 잘 달려서 준마와 맞설 수 있는 것은 우리나라에 말[馬]이 귀하고 수레가 없어서 도보로 달리기를 익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낮에 걷기 위하여 밤에 식량을 장만하는 일은 다반사이고 보면 보통 사람보다 갑절을 더 걷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길로는 연경燕京이다.
역졸驛卒이 걸어서 수레와 말을 모는데, 역졸 하나가 일생 동안에 연경을 40~50회 정도 왕복하게 되므로, 이수里數로 따지면 40만 리쯤 되고 보수步數로 따지면 1억 4천 4백만 보가 되니, 이는 그 대충을 들어 말한 것이다.
그러나 세속에서, 땅에서 하늘까지의 거리는 9만 리가 된다고 하는데, 밀도密度(정밀한 척도(尺度))로써 계산하면 땅에서 하늘 중간까지의 거리는 15만 □천 3백 46리가 되므로, 역졸이 도보로 연경을 왕복한 이수는 땅에서 하늘까지의 거리보다 다섯 갑절이나 더 먼 거리이니, 어찌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대부大夫가 행역行役할 때 하루 길은 30~40리에 불과하므로 연경을 석 달의 길로 삼지만, 잘 걷는 자가 빨리 달리면 수십 일이 못 되어 왕복할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수레와 말이 많아서 걸어다니는 자가 없으면서도 행역行役하는 것을 괴롭게 여기므로, 감발 차림으로 걷는 우리나라 사람과 비교하면 마치 큰 붕새 앞에 조그만 비둘기와 다름이 없다.
우리 동쪽 사람들이 잘 달린다는 것은 예로부터 그만한 증거가 있다.
왕회해王會解에, ‘발인發人은 녹鹿과 같은데, 녹은 사슴처럼 신주迅走함을 뜻한다.’ 하였고, 그 주에 ‘발인은 동이東夷의 사람을 말하고 신주는 빨리 달림을 말한다.’ 하였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지역은 곧 옛적에 구이九夷가 살던 곳이므로 지금까지 그 풍기風氣가 없어지지 아니하여 빨리 걷고 빨리 달리는 것인지.
후한서後漢書에 “고구려에서는 절할 때에는 한 다리를 꿇고 걸을 적에는 모두 달음질친다.” 하였다.
남연南燕 모용초慕容超 때 고구려에서 천리인千里人 10명을 바쳤는데, 천리인이란 하루에 1천 리를 갈 수 있는 자를 말한다.
담헌 선생湛軒先生 홍대용洪大容의 연행잡기燕行雜記에,
“내가 일찍이 고사古史에서 ‘조선朝鮮의 동자童子들은 잘 달린다.’는 말을 보고 내심 괴이하게 여긴 것은, 동자들이 잘 달리는 것은 그 천성이라고 본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중국의 동자들을 보니, 아무리 경쾌한 놀이를 하더라도 절대로 우리나라의 동자처럼 뛰거나 달리는 자가 없었다.”
하였는데, 나도 그 점을 괴이하게 여겨 늘 까닭을 연구해 보곤 하였다.
허신許愼의 설문說文에 ‘동東은 움직인다는 뜻이다.’ 하였고, 풍속통風俗通에는 ‘동쪽 사람들은 생동生動하기를 좋아하는데, 만물도 땅을 저촉觝觸해서 생겨난다.’ 하였으니, 저촉도 움직인다는 뜻이다.
대저 동쪽 사람들이 걸음이 빠르고 또 달리기를 좋아하는 것은, 만물이 땅의 기운을 저촉해서 생겨나는 동쪽 지역에서 난 때문에 생동하기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 아닌지. (한국고전번역원 옮김을 전재한다)
외적이 쳐들어왔다 하면 냅다 산으로 튄 이유가 무서워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걸음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변변찮은 도로 하나 없고, 그렇다고 타고 다닐 자가용, 곧 마차가 있을 리도 없으며,
말조차 관아에서 관리하는 몇 마리밖에 없는 그런 거지 나라 조선의 슬픈 자화상이 저 마라토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