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초나라 대왕묘 발굴을 주시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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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중국 고고학계를 흔든 발굴 중 하나인 안휘성安徽省 회남시淮南市 우왕돈武王墩 1호묘 발굴 양상 중 봉토를 걷어내고 이른마 매장주체부가 드러나기 시작한 장면이다.
이른바 亞자형 배치를 한 양상인데, 저 안에 무덤 주인공을 안치한 나무널 관棺이 있고, 그 주변을 저런 이른바 사이드 룸, 측실側實들이 사방을 꽉 메웠다.
첫번째 사진이 보다시피 송판을 쫙 깔아서 덮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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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판 세부 모습을 보면 앞과 같다. 수종분석 결과가 나왔을 텐데 이 지역에서는 관재로 흔하게 쓰는 그 나무를 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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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송판 위에는 이런 댓자리를 좍 깔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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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곽棺槨 구조는 이렇고 그에서 드러나는 양상이 이렇다.
중실中室이라 표시한 지점에 무덤 주인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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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측실 중 한 곳 껴묻거리 양상이다.
기가 차지 않는가?
이런 거 보면 눈알 뒤집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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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저 덮개 송판 중 일에서는 이런 묵글씨가 확인됐다.
뭔가?
간단하다. 어느 부위에 몇 개를 써야 할지를 적은 것이다.
예컨대 중실 지붕에는 30개 송판, 남1실에는 송판 20개 뭐 이런 식으로 저 송판을 깔아야할 지점을 표시한 것이다.
더 간단하다.
당연히 설계도에 따라 제작한 것이다.
그러니 제발 한국고고학 헛소리 마라. 구획을 했다느니 하는 헛소리 말이다.
지극히 당연한 말 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설계도가 있고 그에 따라 시공이 이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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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벽돌들이다. 저 벽돌 중 일부에서는 어느 지점에 가야할 벽돌인지를 글씨로 표시해놨다.
저 옆구리에 보이는 문자 흔적이 그것이다.
왜 한국고고학이 특히 이번 초나라 대왕묘를 부릅뜨고 봐야 하는가?
이로써 명백하지 않은가?
한국문화사는 세계문화사다.
저 중국 발굴을 보면 마차갱이 있다는데 보나마나다.
상여다.
마왕퇴 한묘 역시 주구장창 우리가 파야 한다.
왜?
동아시아 문화 저변을 관통하는 그 흐름 한복판에 위치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