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백범 김구의 총알체 병풍 글씨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3. 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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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이 이런 작품도 다 남겼더라]


백범 김구(1876-1949)의 삶은, 그가 했다는 한 마디 말로 요약된다.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요."
 
그의 삶에 물론 그늘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없었던들 과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십 년을 버티며 독립의 꿈을 놓지 않았을까.
 
또, 해방된 조국의 남과 북이 갈라져나가던 순간에 누가 이를 피 흘리지 않고 붙여보려는 노력을 했을까.

그는 분명 한 시대의 거인이었다.

그는 붓글씨를 많이 남겼다.
 
대개 45년 환국 후 경교장에서 각 잡고, 또 전국 순방을 하며 즉석에서 쓴 것들인데 전해지는 것만도 족히 몇백 점은 되지 싶다.
 
백범일지에 서명한 것까지 합하면 헤아리기도 힘들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귀한 대접을 받는다.
 



인기가 있으니 가짜도 적잖이 나돌고 복사본, 영인본도 셀 수가 없다.
 
다들 그의 글씨를 보고 "우와..."라 하지만, 그렇다고 선뜻 '잘 썼다'고 하기는 주저된다.

획이 떨어서 구불구불한 것이 처음 보면 괴이하기 때문인데, 하지만 알고 보면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백범의 글씨는 '총알체'라 불리곤 한다. 

임시정부를 와해시키려는 일본의 공작, 이른바 '남목청 사건'으로 그는 가슴에 총을 맞았다. 

다행히 수술을 받고 그는 살아났지만 총알을 완전히 제거하진 못했다. 

이후 그에겐 오른팔에 힘을 주면 부르르 떨리는 현상이 생겼고, 그로 인해 필획이 떠는 특유의 필치가 나타났다.

워낙 특징적이라 가짜를 만드는 이들도 일부러 팔을 떨어서 쓴다는데, 그러다보니 너무 보기 싫게 획이 움직여 외려 금방 구분된다 한다.  

진품이 확실하다면 아마 그가 남긴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게 아닐까 싶은 것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백범이 죽던 해 1월 8일(이봉창 의사의 의거일), '김용성 동지'를 위해 <채근담> 두 절과 <심잠> 한 편, 자작시 한 절과 '해방시조' 몇 구, 서산대사의 시(지금은 조선 후기 문인 이양연의 시로 밝혀졌지만)를 붙여 써서 만든 10폭 병풍이다. 

<채근담>과 <심잠>, 서산대사시는 그가 단독 작품으로도 여러 폭 쓴 주제인데, '해방시조'가 눈길을 끈다. 

백범이 <백범일지> 원고와 편지를 제외하면 한글 작품을 남긴 게 드문데, 이는 글자 크기도 클 뿐더러 심지어 시조이지 않는가. 
 
그 소재도 독립과 해방이고. 백범이 직접 지은 건지 아니면 당시 유행하던 건지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꽤 놀라운 작품이다. 

되도록 덜 떨려고 노력했는지 글자획도 다른 백범 글씨에 비해 정연한 편이다. 

도서낙관도 백범이 즐겨 쓰던 성재 김태석(1875-1953) 각이 맞다.

김용성이란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백범과 아주 가까웠던 모양이다.

어지간히 신임받지 않고서야 이런 작품을 받을 수 있었을까.

형식으로도 그렇고 내용으로도 그렇고 앞으로 연구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어보인다.

좀 더 널리 알려지기를.

(사진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이뮤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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