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산 가옥 인수해 시작한 연양갱, 80살을 맞다

광복×연양갱 80주년 기념 에디션이 출시됐다.
1945년 출시한 연양갱 생산 80주년을 기념해 안중근의사기념관을 비롯한 주요 독립운동기념관 5곳 이미지와 소개 문구를 영양갱 패키지에 넣었는데 초도 생산량은 80만 개다. (연말 안에 매진되면 추가 생산한다고 한다.)
광복80주년을 맞아 지난 4월부터 해태제과와 협업한 결과물로, 소개 문구를 작성하고 일러스트 컨펌을 진행했다.
사실 해태제과 연양갱 생산 80주년은 약간 어폐가 있는데, 일제강점기 경성부 용산에 있던 나가오카永岡제과 남영동 공장을 적산으로 불하받은 해태제과에서 기존에 생산하던 '네리요캉練り羊羹'이라는 이름을 "연양갱鍊羊羹"으로 바꾸어 출시한 것이기 때문이다.(練과 鍊으로 한자는 다르다)

아무튼 이 해태제과의 연양갱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과자류 제품으로 공인되어 있다.(얼마전 노래로 인기를 끈 '밤양갱'은 크라운제과 제품이다.)
한때는 롯데와 더불어 한국 제과시장을 양분하며 프로야구 리그마저 평정하던 해태였으나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IMF 외환위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현재는 크라운제과의 자회사로 편입되었다.
광복되던 해 적산기업을 불하받아 일어난 회사는 한국현대사와 함께 파란만장한 운명을 거쳤으되 처음 출시한 연양갱 만큼은 80년간 꾸준히 생산한다.
광복80주년을 맞아 안중근의사기념관이 그려진 연양갱을 맛보며 80년 전 그날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이상 안중근기념관 이주화 학예부장 글이다.
흔히 일본이 패망하면서 물러난 조선은 허허벌판 공지였다 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저 연양갱 생산은 하늘에서 떨어졌단 말인가?
누군가 기술을 전수받았기에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이 고리들을 이제는 찾아가야 한다.
고고학의 경우 흔히 하는 말이 호우총 은령총 발굴이다.
1년 동안 묶인 아리미쓰 교이치한테서 발굴을 전수받은 사실 대서특필해야 한다.
저 연양갱 제조기술 전수 문제는 해태제과 사사 같은 데 분명히 증언 같은 것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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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런 의문에 이주화 군이 다음과 같이 답한다.
해태제과 공식 사사에는 나가오카제과 남영동 공장 경리직원 박병규(박건배 회장 부친)가 광복 후 대표직원이 되고
공장 기술자와 생산설비 관리직원이었던 민후식, 신덕발, 한달성과 함께 자본금을 모아 1945년 10월 3일, 미군정에 '해태제과합명회사'라는 이름으로 인가를 받고 '연양갱'을 생산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다.
사회 전 부문에 걸쳐 이랬다.
식민지 유산은 유구했고 거대했으며
결코 그것은 일제가 패망했다 해서 단절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은 식민지 유산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