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0년 전 터키 원시 도시는 '여성 중심' 사회였다

터키 신석기 시대 원시 도시에 묻힌 유골 유전자 분석을 통해 초기 농경 사회에서 여성 혈통이 중요했음이 밝혀졌다. [이젠 선사시대가 저랬다는 보고는 생소하지는 않다.]
터키의 석기 시대 매장지에서 채취한 고대 DNA 분석 결과, 9,000년 된 원시 도시 차탈회위크Çatalhöyük가 모계 사회였는지에 대한 수십 년간의 논쟁이 마침내 종식되었다.
이 연구는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의심한 것을 마침내 확인했다.
여성과 소녀들이 이 농경 사회 핵심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터키 중동기술대학교 진화유전학자이자 연구 공동 저자인 메흐메트 소멜Mehmet Somel가 이끄는 연구팀은 이런 성과를 정리한 논문을 267일(한국시간) 발간된 저널 Science에 공개했다.
터키 남중부에 위치한 차탈회위크는 기원전 7,100년경에 건설되어 거의 1,000년 동안 사람이 거주했다.
32.5에이커(13.2헥타르)에 달하는 이 광활한 정착지는 지붕으로 들어가는 가옥, 바닥 아래에 묻힌 무덤, 그리고 생생한 벽화와 다양한 여성상 등 정교한 상징주의로 유명하다.
고고학자 제임스 멜라르트 James Mellaart 가 1960년대 초 차탈회위크를 처음 발굴했을 때, 그는 수많은 여성상이 "어머니 여신mother goddess" 숭배를 실천한 모계 사회 증거라고 해석했다.
아마도 채집에서 곡물 기반 농업으로의 주요 경제적 전환 이후 풍년을 보장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것이다.
1990년대 스탠퍼드 대학교 고고학자 이언 호더 Ian Hodder가 차탈회위크 발굴 작업을 맡았고, 그의 연구는 이 사회가 대체로 평등주의적이었으며 남녀 간에 의미 있는 사회적, 경제적 차이가 없었음을 시사했다.
차탈회위크의 사회 구조를 심층적으로 조사하기 위해, 소멜과 호더를 포함한 연구팀은 새로운 연구에서 주택 바닥 아래에 묻힌 기원전 7,100년에서 5,800년 사이로 추정되는 유골 131구 DNA를 분석했다.
연구진은 31개 건물에 거주하는 109명을 연결하여 1차 친척(부모, 자녀, 형제자매)은 모두 같은 건물에 함께 묻혔고, 2차 친척(삼촌, 숙모, 조카, 조카딸, 조부모)과 3차 친척(사촌, 증조부모 등)은 인근 건물에 묻히는 경우가 많았음을 발견했다.
연구진은 이러한 사실이 차탈회위크의 가구 구성에 핵가족이나 대가족nuclear or extended families이 역할을 했음을 시사한다고 연구 논문에서 밝혔다.

하지만 연구진은 가옥 매장지에서 세대 간 연관성을 보이는 또 다른 흥미로운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모계 혈통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소멜은 "건물 내에서 이러한 모성적 연관성을 특별히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고 말했지만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 시대 유럽에서 흔히 기록된 남성 중심적인 관습이 보편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고대 DNA 분석은 또한 유아와 어린아이의 생물학적 성별을 밝혀냈는데, 이는 사춘기 이후에야 유골만으로는 알 수 없다.
연구진은 이 아이들 생물학적 성별이 확인되자 부장품에서 여성과 관련된 경향을 발견했다.
"여자 아기를 위한 더 많은 장례용품의 패턴 또한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고 소멜은 말했다.
차탈회위크는 DNA 증거를 통해 여성 중심의 사회 조직이 드러난 가장 오래된 사회다.
"내가 아는 한, 이는 신석기 시대에 이처럼 지속적으로 모계 중심 사회가 조직되었다는 최초의 체계적인 증거다"고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독일 고고학 연구소 고고학자 옌스 노트로프Jens Notroff는 말했다.
"모계 중심matrilineal이라는 용어 대신 '여성 중심female-centere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모계 중심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이 친족을 정의하는 방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소멜은 말했다.
"차탈회위크 가구는 모계 중심이었을 수도 있지만, 더 일반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항상 신중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 채플힐 캠퍼스 고고학자 벤저민 아버클Benjamin Arbuckle은 Science에 기고한 글에서 "성별 분포 패턴이 역전된다면 가부장적 권력 구조patriarchal power structures가 작용했다는 결론을 내리는 데 주저함이 거의 없을 것"이라고 기술했다.
"이는 모계 권력 영역이 광범위했고 지금도 광범위하다는 풍부한 고고학적, 역사적, 민족지학적 증거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가 상당한 여성 권력이 특징인 세계를 상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반영한다"고 아버클은 말했다.
노트로프는 차탈회위크가 신석기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부계 중심 패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며, "이러한 사회 조직의 심오한 변화가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을 제기한다"고 덧붙였다.
소멜은 차탈회위크에서 발견된 유골을 분석하여 사회적 관계를 이해하는 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이 고유한 것인지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중요한 다음 단계다.
그는 "현재 이 지역 초기 사회에서도 유사한 데이터를 생산하고 있다"고 말하며 "곧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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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계 중심으로 사회가 형성됐다 해서 그것이 여성 권력 중심인가는 전연 별개다.
우리가 흔히 모계사회라 하지만 그런 모계사회도 결국 그 중심은 남성이었으니, 예컨대 그런 사회 권력자는 외삼촌이었다.
이 논란이 선사고고학 선사인류학에서도 왜 없겠는가?
여성 중심 사회라는 것과 여성 권력 중심인가는 단연 별개다.
조선시대를 보면 아이는 태어나서 한동안 외가 생활을 하고, 심지어 그쪽에 가서 아예 죽치고 눌러 앉아 사는 사람이 많다 해서 그 사회가 여성 중심 사회? 모계사회인가?
저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저 문제는 실은 선사시대 DNA에 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 사회에 있을 수도 있다.
사자 왕국이 숫사자 한두 마리에 암사자 열 마리라 해서 암사자 중심인가?
이 문제 복잡하다.
여자 바가지가 심하다 해서 여성 권력 중심인가?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