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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성채에서 똥싸는 방법과 장소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8. 0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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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성채에서는 이렇게 화장실을 성벽에 설치하고 저리 화장실 만들어서 쌌다고

 

당시 프리비privy 또는 가르데로브garderobe라 일컫던 중세 화장실은 원시적인 형태였지만, 성 안에서는 다른 곳보다 조금 더 편안하고 훨씬 더 많은 디자인적 노력을 기울였다.

실용성, 프라이버시, 그리고 효율적인 폐기물 처리가 모두 고려되었으며, 오늘날에도 폐허가 된 중세 성에서 가장 눈에 띄고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외벽에서 튀어나온 변소다.

가르데로브garderobe라는 용어는 나중에 프랑스어로 옷장을 의미하게 되었는데, 원래 의미는 성 화장실에서 필요 이상으로 크지 않은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쌌다고. 지금도 그런 흔적이 남아있다.



변소는 일반적으로 성벽에 내장되어 코벨(corbel, 성벽 일부) 위로 돌출되어 있었고, 오물은 성 해자로 흘러내렸다.

때로는 오물이 강으로 바로 흘러가기도 했고, 어떤 성에서는 안뜰이나 외벽으로 바로 연결되는 변소 통로를 사용하기도 했으며, 어떤 성에서는 편리하게 절벽 위에 매달아 두기도 했다.

변기를 구성하는 돌출된 석조 기둥은 아래에서 지지되거나 탑과 벽 접합부에 자리 잡았다.

어떤 오물 기둥은 짧았고, 어떤 기둥은 거의 지면까지 닿았다. 후자의 경우, 성이 포위될 경우 위험한 설계적 특징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적의 침투 경로가 된다는 뜻] 

 

지금도 심심찮게 보는 서양 중세 성채 화장실



또 다른 설계는 외벽에 여러 겹 변기를 설치하여 이 기둥들이 오물을 같은 수거 장소로 보내는 것이었다.

1층 건물에도 변기가 있었는데, 이 변기들은 오물을 배수하기 위한 돌 배수로가 있었다.

이러한 수거 장소나 도랑에서 나오는 오물은 지역 농부들이 모아 비료로 재활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14세기 이후 성이 더 크고 편리해지면서 편의시설도 그에 따라 늘어났다.

내부에서 변기는 안쪽 움푹 들어간 곳이나 벽화가 있는 방mural chamber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화장실을 만들었다

 

짧고 좁은 통로가 변기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사생활 보호를 위해 직각으로 굽은 경우가 많았다.

벽으로 분리된 두 개 변기가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고, 이 변기들은 같은 폐기물 배출구를 공유하기도 했다.

성주와 성직자의 방에는 필요한 경우 요강을 포함한 개인용 변소가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모두가 가지고 있던 부속품이었다.

변기 좌석은 석조 건물의 갱도를 덮는 나무 벤치로 만들어졌다. 나무는 보통 직사각형이나 열쇠구멍 모양으로 잘려 있었다. 건초, 풀, 심지어 이끼까지도 화장지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변기는 건초에 불이 붙거나 사람들이 갱도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장소이기도 했다.

 

저러다 화장실 전체가 붕괴하면?



중세 화장실에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기 위한 창문도 있었다.

또한, 일부 화장실에는 신선한 공기를 들이기 위한 창문이 있었는데, 같은 이유로 성의 다른 창문처럼 덧문이 없었다.

바닥에는 해충을 막고 더 좋은 향기를 내기 위해 골풀rushes, 향기로운 허브, 꽃이 흩어져 있었을 것이다.

벽에는 석회를 칠하여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을 극대화하고 박테리아를 죽이는 효과도 있었다.

중세 화장실

또한 소변기urinals도 있었다. 소변기는 방어군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필요가 없도록 일부 성벽에 삼각형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성채 화장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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