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만조선論] (2) 남월南越, 한漢을 물로 보는 흉노의 남익南翼
여러 차례 이야기했지만 지금의 중국 광동성과 베트남 북부를 한때 호령한 남월南越은 그 건국 팽창 과정이 아예 위만조선의 그것과 판박이라,
이쪽도 중국계 유민이 야금야금 터잡고선 주변을 차례로 정복해 제국을 구축했으니
이 과정에서 위만에 견줄 만한 걸출한 인물이 나타나니, 그가 남월국 개창주 조타趙佗라,
물경 백세를 누린 그는 본래 진정眞定 출신으로 진 제국이 해체될 무렵에는 남해군南海郡 용천현령龍川縣令이었다가
천하가 혼란한 틈을 타서 지금의 광동성 광주에 웅거하고서는 남월국을 개창했다.
이 대목을 사기 남월열전에서는 이리 적었다.
진秦 망한 뒤에 조타는 바로 계림郡桂林과 상군象郡을 공격해 병합하고, 자신을 내세워 남월의 무왕武王이 되었다. 한漢 고조高祖가 천하를 평정한 후, 중원 백성들 노고를 생각하여 조타를 그대로 놔두고 죽이지 않았다.
이는 개소리라, 그럴 계제가 아니었다.
한이 내부 혼란을 수습한다면서 개국공신들인 이성異姓 제후들까지 차례로 제압하면서 강력한 중앙집권을 향해 나갔지만,
이때 거대한 변수가 있었으니 바로 북쪽의 거대한 강적 흉노였다.
통일 과정에서 유방은 흉노한테 혼꾸녕이 났으며 지금이 산서성 북쪽 대동 일대 백등산이라는 데서는 하마터면 흉노에 포로로 잡힐 뻔했다.
뿐인가? 유방 시대에도 그렇고, 그를 이은 아들 혜제, 그리고 여태후 시대 이래 백년 뒤 한 무제에 의한 대대적 보복 응징이 있을 때까지 시종 흉노에 굴종하며 실상 굴욕적인 사대를 해야 했다.
이 사태 전개를 아무리 저쪽 남방 변두리에 있는 남월이 몰랐겠는가?
아니 그러기는커녕 실은 너무나 이 사태를 잘 알았다.
뒤에 보게 되겠지만, 조타가 주변 지역을 정복해가는 과정은 위만이 주변을 정복해 가는 과정이랑 아주 똑같다.
한 제국은 남쪽 남월, 그리고 동북쪽 조선, 곧 위만조선이 주변 지역을 차례로 정복해가면서 자신들한테 잠재적 위협이 될 수 있는 제국으로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넋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왜? 저들을 응징하자니 그 빈자리를 흉노가 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남월과 위만조선의 결정적인 흉노와의 차이가 빚어지는데, 지리상 이유가 가장 컸겠지만,
위만은 절대적이면서 직접적인 흉노의 후광 혹은 묵인 아래 제국으로 성장해 간 반면, 남월은 흉노와 직접 교통이 통제된 까닭에 그러기는 힘들었다.
그렇지만 남월은 알았다.
아니 이를 맘껏 즐겼으니, 자신들 위협이 될 수 있는 한이 계속 흉노한테 밀려 얻어터지는 그 국제 정세를 맘껏 이용해 자신의 제국을 구축해 나갔다.
나는 이 과정에서 남월과 흉노가 어떤 식으로건 통교를 했다 보거니와,
아마도 위만을 통한 간접 통교가 가능하지 않았겠느냐 싶기도 하고, 또 직접 통교도 아주 불가능하지도 않았으니, 서해 항로를 통해 얼마든 흉노와 접촉할 수 있었다고 본다.
암튼 남월로서는 북쪽에서 계속 흉노가 한을 견제 혹은 억제하는 일이 필요했는데, 다행히도 흉노는 계속 한 제국 성립 이후에도 거의 백년 정도나 한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남월 또한 흉노가 그랬듯이 한을 아주 우습게 보는데, 특히 그 건국주 조타의 행동은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으니
심지어 고후高后, 곧 유방 마누라 여태후가 집권한 시절에는 한나라 조정에서 남월이 주로 장사국을 통해서였겠지만 변경 무역시장에서 철기鐵器를 교역하는 일을 금지하자는 일을 청했으니,
놀라운 점은 이 소식이 실시간으로 남월 조정에 날아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당시 정보망이 얼마나 발달했을지는 엿보게 하거니와, 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조타 자신의 발언을 남월열전은 저록한다.
고조 황제가 저를 남월왕으로 삼고 쌍방이 사신과 물자를 오가게 하였는데 지금 고후께서 참소하는 신하 말만 듣고 우리를 만이蠻夷로 분류하여 물자교역을 끊으려고 하니, 이는 반드시 장사왕長沙王의 계책으로 그는 중국에 의지해 남월을 격멸시키고 남월왕까지 겸하여 자신의 공으로 삼으려는 것입니다.
이 대목 무섭지 않은가? 조타는 이 사태에 직면해 장사왕을 참소하고 나선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계책은 장사왕 머리에서 나온 것으로, 그가 우리 남월까지 겸병하겠다는 의도이니, 이는 곧 중앙 정부에도 위협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경고에 다름 아니다.
결국 조타는 한 중앙정부를 향해 장사왕을 쳐야 한다는 역공작을 펼친 것이다.
조타는 알았다.
개국공신 이성 제후들이 다 주살되고 오직 장사왕 오예吳芮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장사왕 역시 언제 중앙정부 칼날이 자신을 들이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왜?
개국 과정 동기동창이라는 동기동창은 모조리 반역 역적 혐의를 뒤집어 쓰고 처단된 마당에 오직 자기만 자리를 지킨다는 사실이 실은 얼마나 불안했겠는가?
그래도 중앙정부에서 오직 장사국만 남겨둔 까닭은 내가 보건대, 이곳이 땅만 넓었지, 변두리 중 변두리인 데다가 무엇보다 인구가 희박한 까닭이었다.
왜 한신과 노관 팽월 같은 개국공신들을 처단했겠는가?
이들은 아주 위협적이었다.
무엇보다 이들이 장악한 제후국은 인구가 너무 많았다. 쪽수에서 중앙정부에 언제건 위협을 가할 존재들이었기 때문이다.
암튼 남월이 직접 통교는 없었다할지라도, 한 제국을 견제 억압하는 범 흉노 연맹 일원이었음은 명백하다.
이 점을 알아야 왜 무제 시절에 한 제국이 흉노 직접 좌익인 위만조선을 치기 직전에 남월을 먼저 쳐야했는지를 비로소 해명한다.
따라서 남월은 흉노의 남익南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