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바닥에 돌로 쌓은 백제 산성 연못 금산 진산성에서 드러나
근자 충남 금산군이 고고학 발굴과 관련한 보도자료 하나를 배포했으니
군내 진산면 읍내리 680 일원에 소재하는 고대 성곽 진산성 동쪽 건물터와 동문터가 있을 곳으로 추정한 곳 일원을
국가유산청 2024 역사문화권 중요 발굴조사 일환으로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가경고고학연구소에 의뢰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바닥은 나무로 짜고, 그 외곽은 돌을 계단식으로 쌓은 사각형 백제시대 연못 흔적으로 찾았다고 한다.
이를 조사단과 의뢰 기관은 집수지集水池라 했지만, 계속 하는 말이지만, 이는 말도 되지 않는 표현이라,
물을 모으는 연못이 말이 되는가? 연못이 그럼 물을 모으지 돌을 모은단 말인가?
암튼 이런 목석木石을 혼합한 구조가 이례적이라 평가하면서 백제시대 문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백제 산성에서는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라 하는데, 그런가?
나도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요새 소식은 통 몰라 감을 잡지 못하겠다.
나아가 이번 조사에서는 그 외에도 같은 백제시대 축대 시설과 고려시대 유산들로 축대‧배수로 시설, 체성부(성벽 몸체) 내벽과 동문터 일부를 확인했다고 한다.
산성이라면 으레 확인되는 이런 연못은 계속 말하듯이 물이 모이는 계곡 지점, 성벽 안쪽에 만드는 특징이 있다 했거니와, 이번 것도 보나마나 그짝일 것이다.
공중에서 내려다 본 평면 형태는 장방형으로 남-북 길이 706㎝, 동-서 너비 602㎝, 깊이 약 4.3m다.
위쪽에서 드러나야 하는 물을 대는 통로, 곧 입수구와 관련 석축 몸통 시설이 거의 그대로 훼손 없이 발견된 점을 주목해야 할 성 싶다.
특히 이 연못과 인근 성벽과 동 시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됨에 따라 현재 진산성이라 일컫는 이 성곽을 백제시대에 처음 쌌았을 것으로 보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조사단은 평가한다.
조사단은 이 연못이 단순히 물을 모으기 위한 용도 말고도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성을 보인다고 말했는데,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언뜻 와 닿지는 않는다.
연못은 바닥에다가 판재를 깔고 그것을 다른 목재를 묶은 다음 그 위에다가 다듬은 돌들을 이용해 계산식 들여쌓기 수법으로 벽을 만들었다.
저 크기는 아마도 맨 위층을 기준으로 했을 것이다.
이 바닥을 짠 수법을 보면 천상 마루다.
석축 벽면은 총 8단을 이룬다.
가장 아래쪽 벽면은 약 100~110㎝ 높이까지 6~7단 정도를 수직으로 쌓고 그 위에 약 30~40㎝ 높이로 3~4단 석재를 쌓아 상대적으로 낮은 단을 이루도록 한 것으로 밝혀졌다.
벽면 기울기는 54도를 이루니 이것이 안정화한 구조를 보인다고 조사단은 평가한다.
바닥에서는 삼국시대 백제시대 토기 조각들과 태선문 계통 기와 조각 유물이 드러났으며 개중에는 문자가 적인 인장와, 이른바 도장기와가 수습됐다.
이 도장 기와는 현재까지 발굴성과를 볼 때 주로 암키와에서 집중으로 드러난다.
이번 인장와는 너비 2.1㎝ 방형문에 1개 글자를 양각한 형태인 것이 있는가 하면 너비 4.2㎝ 방형문에 ‘丁巳瓦○○○’를 양각한 것이 확인됐다.
백제 사비시대 정사년丁巳年에 해당하는 시기는 위덕왕 44년(597년)과 의자왕 17년(657년)이 있지만 유물 양상으로 보아 전자로 판단했다.
간단히 위덕왕 시대에 만든 산성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간지, 곧 연대를 새긴 백제기와는 금산 백령산성과 대전 흑석동산성 등지에서 출토 사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