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 1편에 붙은 각주 216개, 선행연구는 단 한 편도 없다
연구자로 내가 존경해마지 않는 일본 도교사가 후쿠나가 미쓰지 복영광사福永光司의 호쾌한 논문 도교에서의 경鏡과 劍 이라
이 논문은 그의 논문집 도교사상사연구(암파문고, 1987) 첫머리에 수록됐으니
이 논문이 지닌 의미는 제끼고 이 양반이 이 논문에다가 부친 각주(엄밀히는 후주) 숫자랑 그 내용을 주시해주기 바란다.
먼저 주석 숫자.
물경 216개다.
본문과 주석이 거의 엇비슷한 분량이다.
다음 그 주석들이 어떤 것인지 본다.
거의 전부 원전이다.
곧 자기 입론을 뒷받침하고자 뽑아낸 원전들과 그 출전, 그리고 그 원문이다.
우리가 선행연구성과라 부르는 논문?
단 한 편도 없다.
매원말치 책이 두어번인가 인용되기는 하지만 것도 자료집이다.
단 한 군데서도 지금껏 어떤 연구자가 이 주제에 대해 어떤 글을 쓰고 어떤 견해를 표출했는지 아예 언급이 없다.
이런 글쓰기는 이 양반 다른 글 전편을 관통한다.
그렇다면 저 무수한 주석은 덕지덕지 장식용인가?
천만에.
어느 것 하나 적실的實하지 아니한 것 없다.
저 논문을 통독하면 이 사람이 어떤 식으로 공부했는지를 짐작케 되는데
내가 말한 그 공부방식이다.
다시 상기하자면 원전을 독파하며 일일이 메모한 것들이다.
한데 그 독서량이 엄청나서 그 장대한 도장은 거의가 다 읽은 듯하고 뿐만 아니라 25사를 필두로 하는 중국 고전이라는 고전은 깡그리 훑었다.
그걸 읽어내리며 메모한 것들이 쌓여 저런 논문이 나왔다.
선행연구성과?
그 딴 게 왜 필요하단 말인가?
저리 공부하며 내공을 쌓은 사람한테 누가 대적한단 말인가?
한데 저보다 한 세대가 내려오면 일본학계도 망조가 들어 우리한테 익숙한 그딴 논문쓰기로 돌변하니
같은 도교사가로 와세다대 교편을 잡다 퇴직한 소림정미小林正米 논문들 봐라.
차마 못 봐줄 지경이다.
공부는 어찌하며 논문은 어찌 쓰야하는가를 볼 것 같으면 후쿠나가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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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은 한국어를 버리고 외국에 보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