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산불, 화력은 장정구 vs. 타이슨

내 고향 어릴 적 내가 삶 절반을 보낸 뒷산이 비봉산이라는 데다.
봉곡사라는 사찰이 진좌한 해발 680미터인가 되는 산이다.
조선시대 후기 지도들을 보니 문암산文岩山이라 되어 있는데 이는 이두 표기다.
우리 마을에는 이 산에 난 골짜기 이름을 문바우라 하는데 그 문바우를 저리 적은 것이다.
호랑이가 사는 동굴이 있다 해서 그리 부른다.
내가 샛터에서 인근 양지마을로 이사하던 때가 내가 국민학교 들어가던 해다.
딱 51년 전이다.
그 샛터가 내 생가인 셈인데, 그때 이 집은 초가였다.
그래서 봄마다 지붕 새로 짚을 깔아 덮었다.
그 이사하기 몇년 전쯤이다.
그러니 지금으로부터 대략 52년 혹은 55년 전 어간일 텐데, 그때 저 비봉산, 문암산, 문바우에 불이 났다.
낮에는 산불이 그리 무서운 줄 몰랐다.
연기만 자욱히 반대편 봉곡사 쪽에서 불길이 올라오는 듯했다.
이 산불 난 지점과 우리 집은 대략 3킬로미터 정도가 떨어졌을 텐데, 그 산불이 일으킨 잿더미는 우리 동네로 날아들었다.
불이 나자 동네 주민들이 불끄러 간다고 다 동원됐다.
불끄는 장비?
별게 없어 삽자루 지고 올랐고, 그래서 그 삽으로 불을 내리치거나 아니면 잔불은 흙을 퍼서 누질렀다.
그것 아니면 큰 솔가지 꺾어 그걸로 내리 쳤다.
이것이 불끄는 방식이었다. 이게 다였다.
헬기? 그때 헬기가 어딨어?
불은 그날 밤도 계속됐다.
한데 그 밤에 타오로는 불길을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만큼 웅대했다. 이 세상 무슨 교향곡도 그만큼 웅대하진 못했을 것이다.
저 산너머로 치솟는 그 불길, 환상 협주곡이었다. 동네 다 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불이 신기한 게 불길은 절대 계곡을 타고 넘지 못한다는 점이다. 왜?
그 맞은편 계곡에서 불어오르는 맛바람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산불 난 곳을 보면 한쪽 능선만 시커멓다.
그 불길이 바람을 타고 인근 다른 능선으로 옮겨붙을 뿐이다.
그 거대한 불길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후 10년인지 15년인지 지나서 다른 이웃동네 부항에 산불이 났다.
그때도 우리 동네 어른들이 불끄기에 동원됐는데, 나는 그 산불 구경한다고 그 불길이 보이는 곳을 찾아 뒷동산에 올라본 적이 있다.
불끄러 다녀온 어른들이 노루 한 마리가 타서 죽어 있더라고 말한 기억은 있다.
외우 신동훈 교수님과 나눈 이야기이긴 하지만 저때만 해도 우리 산은 민둥산이거니와 그에 가까웠다.
그래서 온동네는 언제나 북적였으니 사방 공사로 민둥산에 오리나무 가시나무 심는다고 여념이 없던 시절이었다.
그땐 어엿한 수풀도 없었다. 오직 사찰 근처 숲과 나머지는 잡목만 있을 뿐이었고, 그 산이란 것들도 곳곳에 사태를 만나 천둥벌거숭이였다.
불은 태우고 싶어도 태울 나무와 잡목이 없었다.
그런 시절에도 그리 무서웠던 불이 지금은 어떤가?
이런저런 논란이 많은 박정희 최대 치적이 산림녹화인데, 그 산림녹화가 빚어내는 역설이 산불이다.
이 산하는 저주받은 땅이라 산림녹화는 밀림을 만들었지만, 산불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봄철에는 극심한 가뭄을 선사하는 그런 저주를 하늘이 퍼부어댔다.
작년인가는 하필 비가 많이 오는 바람에 그런 일을 피했지만 올해는 어김이 없어 역시나 온국토가 산불난리다.
한데 같은 산불이지만 급이 다르다.
그 옛날 저 비봉산 산불이 장정구 잽이었다면, 지금 산불은 마이크 타이슨과 조지 포먼 주먹을 합친 것보다 몇 백 배나 강한 메가톤급 화력을 자랑한다.
같은 가뭄이라 해도 겨울에는 좀처럼 산불이 나지 않는다.
왜 안나는 줄 아는가? 낙엽이 물기를 잔뜩 머금은 까닭이지 딴 이유 없다.
이때는 좀체 불길이 낙엽에도 붙지 않는다.
이 낙엽이 겨우내 명태 황태 만들듯 하다가 새싹이 돋기 시작하는 무렵이면 건딜면 툭하고 터지는 시한폭탄으로 변한다.
지금 나뒹구는 낙엽 밟은 적 있는가?
바작바작 거의 가루가 된다.
그만큼 물기라는 물기는 쏵 빠져 사람으로 치면 완전한 미라가 된 상태다.
이런 데 불길 하는 재앙이다.
산에 오죽 나무가 우거졌는가?
온통 밀림이라, 전 국토 어디에서건 이제 타잔이 산다한들 하등 이상하지 않은 국토로 변모했다.
그만큼 불길은 잡을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밀림화 시대 산불은 진압이 불가능하다. 아무리 물 뿌려봐야 소용없다.
제풀에 지쳐 스스로 불은 소진할 뿐이다.
어디서?
산이 마지막 다다른 그 능선에서 스스로 꺼질 뿐이다.
반대편 맛바람에 막혀 스스로 연료를 소진하고 자결할 뿐이다.
온 국토가 연신 불구덩이에 휘말렸다는 소식, 그 와중에 의성 고운사가 전소됐다는 소식에 우울함이 극대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