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같은 후손 호적의 다른 직역

신동훈 識 2025. 8. 2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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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적을 보면, 

족보에는 별 차이 없는 형제, 혹은 사촌끼리인데 

직역이 다른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17세기 초반 직역이 

형제끼리인데도 누구는 유학인데 

누구는 업무業武나 업유業儒인 것 같은 경우이다. 

이런 경우 높은 확률로 후자는 서자다. 

물론 업무나 업유도 평민의 직역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양반의 직역은 아니다. 

우리 학계는 이를 분명히 이야기 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 문중의 항의 때문일 거라 본다)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는데 

조선후기에 전체 양반 후손 중에 서자가 적지 않았다. 

필자 생각으로는 적자보다 더 많았을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왜냐. 

길고 긴 족보의 리니지에서

한 번만 서자가 조상 중에 나와버리면

그 집안은 금고가 되어버리는 까닭이다. 

내가 서자냐 아니냐가 문제가 아니라 

내 조상 중에 서자가 있으면 덩달아 금고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서자의 수가 적을래야 적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조선후기 한 마을에 일가, 

동성촌이라고 해도, 

그 동성촌은 소수의 적자들을 

다수의 서자출신들이 둘러싼 모양을 하게 된다는 말이다. 

따라서 균역법 시행 당시에 

그 전까지 양반직역으로 군역을 면제 받다가

느닷없이 선무군관이 된 사람들 상당수는 

양반 집 서자 후손들일 가능성이 높다. 

영조가 균역법을 시행할 당시 

새로이 군포를 부과할 선무군관을 도별로 할당하여 강제로 차출하다시피 했다. 

이렇게 할당된 인원은 행정단위 말단이라 할 면과 리 단위까지 내려왔을 터, 

그 동네에서 자, 우리 중에 몇 명은 선무군관이 되어야 한다, 하면

적자가 나섰겠는가 서자가 나섰겠는가. 

각설하고,

양반집 서자 후손들은 스스로를 양반이라 생각했을까 아니면

평민이라 생각했을까. 

일본의 예를 들어서 그렇지만, 

후쿠자와 유키치는 집안 대대로 소속된 번의 문지기인

최하급 무사집안 출신이지만

자기가 사무라이 집안 출신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심지어는 그 자신 하급 무사로 상급무사에게 자기 아버지가 당한

곤혹을 생각하며 노상 이를 갈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무사집안 후손이었다. 

계급의 자의식이란 그런 것이다. 

본인 생각에 반쪽 양반이라고는 해도 

양반 후손이 틀림없는 거 같은데 

직역도 유학을 달기에 항상 아슬아슬하고

균역법 시행 같이 돌발적 사건이 벌어지면

차출되어 선무군관까지 해야 된다면, 

당신 같으면 그 시스템의 전복을 꿈꾸지 않겠는가? 

19세기가 되면 조선 천지에 

이런 불온한 기운이 가득했다고 보아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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