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밍기적대다 결정적인 한 방을 놓친 정조, 삼정 문란을 부르다

신동훈 識 2025. 8. 29.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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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 정체는 뭘까?

 

물론 호적이란 게 동네마다 달라 일반화하기 이른지 모르겠지만, 

균역법 시행후 일반 백성들에게서는 군포 1필을 줄이는 대신 

이 모자란 군필을 원래는 양반들에게 부과하는 것이 당초의 계획이었을 것이다. 

영조의 균역법은 이 모자란 군액을 수포군관收布軍官, 혹은 선무군관選武軍官이라는 이름으로 

원래 군포軍布를 부과하지 않던 이들에게 새로 부과하면서 충당했는데 

이들은 양반의 아래 끄트머리, 중인, 부유한 상민층에 해당했다. 

문제는 위로 양반들의 면역자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면세특권이 남아 있었으므로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양반 면세 특권을 향해 사람들이 질주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 시점이 대략 정조연간에 해당한다. 

이 정조연간에 양반들에게 군포를 부과하고 

서얼 허통이 되어버렸으면 19세기 조선의 모습은 

엄청나게 달라졌을 것이다. 

 

꼭 동시대 사무라이 같지 않음?



이 정조 연간에 시행되어야 할 이 개혁이 미루어지면서

19세기 들어오면 전체 인구의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군역을 회피할 수 있게 되었고, 

나머지 군역을 여전히 지고 있던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무거운 부담을 지게 된것이다. 

19세기의 삼정문란이란 결국, 

면세자 급증과 남아 있는 납세자 부담 급증으로 이어지게 되는데, 

그 원인 제공자는 바로 

정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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