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화사족은 18세기 이후에 비로소 나타났는가

흔히 경화사족이라 하면 18세기 이후
서울을 중심으로 독점적 권력을 누린 사족들을 지칭하는 바
이를 대충 읽으면 경화사족 이전에는 향촌에 분포하는 사족 쪽에 권력이 있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정말 그런가.
필자가 보기엔 우리나라 사족들
권력과 재물을 독점한 사족들은 서울 경기 일원을 벗어나 존재해 본 적이 없다.
사림의 진출과 소위 산림이라는 이름으로 일이백년 향촌 사족들이 득세한 "일시적"상황이 있었을 뿐
우리나라는 삼국시대 이래 도시의 사족을 향촌의 사족이 압도하거나 어깨를 나란히 한 적이 전혀 없다.
고려시대만 해도 권력을 누리던 사족들은 전부 개성을 중심으로 그 주변에 분포해 살았고,
조선이 건국하자 이번에는 한양을 중심으로 그 주변으로 옮겨와
서울 안에 살면서 선산과 농지는 경기 일원에 가지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했지
향촌 사림?
조선 중후기 잠깐 일이백년 있던 현상을 가지고
크게 부풀려서
18세기 이후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서울 경기 일원 사족들이 권력과 재물을 독점하게 된 것을
오히려 특이한 현상으로 보게 만든 것이 경화사족이라는 개념이라 생각한다.
이는 왠만한 집 족보를 보면 금방 아는데
서울 경기 인근 사족과 저어기 촌동네로 내려간 사족들 벼슬은 수준이 다르다.
괜히 우리 다산 선생이 자손들에게 은밀한 목소리로
절대로 서울 떠나지 말고 돈이 당장 없거든 서울 근교에 땅 사서 재물 모았다가
나중에 서울 사대문안으로 집을 옮겨라라고 한 게 아니다.
시골로 내려갔다가는 당장 사족의 존속을 걱정해야 할 판이 되니
무슨 수가 있어도 서울 근교에 남으라고 신신당부한 것이니
역시 다산 선생 눈썰미는 당대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