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랑 조선실록이 남긴 鄕土의 흔적들
향토鄕土라는 말이 일제 잔재이므로, 그것을 지역이라는 말로 교체하라는 문화재청 교시가 오늘 나를 격발케 했거니와, 그것을 부정하는 근거로 나는 이미 전국시대 혹은 늦잡아도 진한시대에는 저 말이 벌써 우리가 생각하는 그 뜻, 곧 말 그대로 고향의 땅, 곧 고향이라는 뜻으로 쓰였다는 증거로써 열자列子를 들이밀었거니와
그것을 확대하여 그래도 못내 미련을 떨치지 못할까 저어하여 이번에는 고려사랑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향토라는 말을 근거로 더욱 보강하고자 한다.
먼저 고려사에서는 저 말이 두 군데 보이거니와
세가世家 권 제44 공민왕恭愍王 22년 7월 정몽주가 풍랑으로 잃어버린 공문을 새로 베껴서 가지고 오다 기사에서 이르기를
고향[鄕土]과 멀리 떨어져 있으니, 부모가 반드시 아들 생각에 잠길 것이고, 아들은 필시 그 부모를 생각할 것이니, 이는 인지상정이다.
隔離鄕土, 爲父母必懷其子, 爲人子必思其親, 此人之常情.
라 했으니 예서도 향토가 고향이라는 뜻으로 쓰였고 열전列傳 권 제24 제신諸臣 경복흥慶復興 열전에 이르기를
너희들이 향토鄕土를 떠나고 친척을 하직하고 몸과 마음을 괴롭히면서 1,000리里나 먼 곳에서 다른 사람을 따르는 것은
爾等離鄕土辭親戚, 苦身憔思, 千里而從人者
이라 해서 역시 예서도 향토가 고향이라는 뜻으로 쓰였음을 본다.
실록으로 넘어가면 이 말이 쏟아진다.
딱 하나만 든다. 태종 17년 윤 5월 28일자 기사에
하물며 향토(鄕土)를 떠나 처자(妻子)를 버리고 양식을 싸 가지고 번상(番上)하러 서울에 여우(旅寓)501) 하며 객지에서 역사에 종사함에 겨를이 없는데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況離鄕土、棄妻子, 齎糧番上, 旅寓於京, 而從役不暇哉?
뭐가 더 필요한가?
그래서 저것이 일제 잔재라 해서 지역地域이라는 말로 바꾼다 하는데, 놀랍게도 이 지역이라는 말 자체가 쓰임이 향토 보다 훨씬 적어 원문 기준올 네 군데밖에 검출되지 않는다. 한데 이 지역은 area라 hometown이라는 의미는 없다. 적어도 실록에 몇 차례 쓴 지역은 local 이 아니라 그냥 area다.
중앙에 대비되어 지역地域이라는 말이 local 혹은 regional라는 뜻으로 전용된 것은 확실히 근대인 듯하다.
따라서 저 주장과는 달리 지역이라는 말이 외려 근대적이며, 따라서 외려 그렇다면 일제잔재일 수도 있다.
말 자체를 보아도 지역地域은 뜻이 매우 비슷한 地와 域을 합성한 말로써, 그 자체 어디에도 중앙에 견준 local 이라는 의미가 없다. 확실히 지역이라는 말이 lcal로 등장한 것은 근대다.
요약하면 첫째 향토라는 말이 일제 잔재라는 말이 언어도단이요 둘째 향토유산을 대체하는 지역유산이라는 말 자체도 언어도단임을 엿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