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군인전"을 받은 사람들은 조선시대 호적의 누구?

조선시대 호적에 보면
앞에서도 썼듯이 양반 평민 천민 이런 식으로 쓰여있지 않다.
양반들은 친가, 처가, 외가 모두 8명 조상이 적히고
그리고 그 사람 "직역"이 적힌다.
관직을 받은 경우에는 관직을 적지만,
그렇지 않으면 유학, 업무, 업유 등의 직역이 적힌다.
이 유학, 업무, 업유란 앞으로 과거를 볼 몸이시니
건들지 말라 그 이야기이다.
무엇에 대해 건들지 말라는 것일까?
바로 군역이다.
조선시대 호적에는 이런 식으로 양반 직역 외에
평민 직역도 쭉 적히는데
이 평민 직역이란 역졸 같은 직역도 있지만
대개 군역과 관련한 직역을 적어두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수군이라든가 이런 식이다.
이렇게 군역이 부과되면 이 사람은 직접 가서 몸으로 군역을 때우거나
아니면 군포를 2필 내야 했다.
이 평민이 내는 군포 2필을 1필로 깎아준 것이 바로 균역법이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이처럼
"군역"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를 본다.
전 인민을 유사시 군대와 관련하여 뭐 하나라도 직무를 줘야 한다는 강박적 발상에서 나온 장부로서,
요즘으로 치면 향토예비군적이나 민방위 딱 그 정도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전 인민 중 평민 이상을 가지고 향토예비군이나 민방위로 편제하되
천민은 이에서 제외하고,
양반은 과거를 보거나 관직으로 나갈 몸이니 봐준다.
이런 발상이 바로 조선시대 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조선시대 호적의 기원인데,
이 호적은 조선만 그런 것이 아니고, 그 연원은 오래되어
고려시대까지도 그 기본적인 틀은 거의 비슷했을 가능성이 많은데,
이 조선시대 호적에 군인전을 끼워 넣는다면,
과연 조선시대 호적을 가지고 보면 그 중 어떤 사람이 "군인전"을 받았던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기록될까?
고려시대 토지제도를 연구하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군인전"이 전시과제도에서는 비교적 간단히 기술되어 있지만
실제로 그 군인전이 차지하는 땅은 무지하게 넓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향촌에 존재하는 엄청나게 큰 지분의 땅이 군인전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인데,
그렇다면 과연 조선시대 호적으로 보자면 그 중에 누가 고려시대의 "군인전" 수혜자에 해당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