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적, 족보, 일기 이야기 (역사인구학)

양상이 전연 다른 광무호적과 융희호적

日莫途遠 2026. 8. 15.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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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넷 신편한국사에서


흔히 인용되는 자료 중에 융희 4년, 1910년이니 나라가 망할 무렵 내무 경찰국에서 호주 직업을 조사했는데

여기 양반이 1.9프로라고 나왔다고 해서 이를 조선이 망할 무렵의 양반 비율이 1.9프로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보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일단 조선시대 호적에도 그 어느 구석에도 "양반"이라고 자기 신분을 적는 법은 없다. 

조선시대 호적은 철저히 양천제에 기반하고 있개 때문에 벌열가문의 후손이건 농민인 평민이건 간에 호적에는 철저히 직역으로만 파악된다. 

호적에는 위에 쓰듯이 상업, 농업, 공업 이런 것도 없다. 

요즘으로 치자면 공무원 자기 직위를 적거나, 

아니면 공무원 준비생, 사시 합격생, 사시 1차 합격생, 

그리고 나머지는 소총수, 포병 등등 자기 직역을 적게 되어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호적 조사를 하는데 당신 직업 뭐요, 이렇게 물었는데 "양반"이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조선시대에도 드물었고,

한마디로 "나는 바보요" 했던 것이나 다름 없다는 뜻이다. 

저 통계안에는 "양반"과 "유생"이 직업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들은 

조사 당시 농사를 안 짓는다는 뜻이 되겠다. 

하지만 그 옆에 84프로에 달한다는 "농민" 중에 

자기들이 "양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바글바글했고, 

실제로 양반들 중에는 자기가 직접 농사짓는 사람들이 19세기 들어오면 

없다고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 시점이 되면 노비를 사역해서 농장을 경영하는 시스템이 상당히 붕괴한 시점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1910년에 조사했다는 이 통계는 잘못된 통계다. 

이보다 앞에 광무연간에 조사된 통계가 있었는데, 

여기에는 양반이 서울의 경우 40프로 정도, 

지방은 50프로가 넘는 인구가 양반인 곳도 있었다. 

이 경우가 19세기 양반 비율에 보다 근접한 통계였다고 할 만한데, 

결국 융희연간의 조사를 함께 놓고 본다면, 

19세기 자기가 양반이라고 생각한 사람 상당수는

실제로는 자기가 농사를 짓고 있었다는 뜻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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