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선의의 정부는 무리를 한다

교육제도는 한 나라가 근대화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하다.
교육된 인구가 있어야 근대화고 나발이고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대화 초입에
특히 동아시아처럼 전혀 다른 교육제도 하에서 살아왔던 이들은
근대적 교육제도를 수립하려 해도
돈도 없고 사람도 없다.
이 때문에 교육제도 정비 초기에는 많은 무리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의 경우도 메이지 초기,
근대적 교육제도가 수립될 때까지 많은 무리를 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메이지 초기에 입신한 많은 이는
엉망인 학벌을 가지고 있다.
사범학교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입학하고 1년 만에 졸업하고 선생이 된다던가,
육사 입학에 정규교육 졸업 경력 없이 받는다던가,
후일 아무나 못 들어가는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대학예비교에
몇 년 안 되는 교육 경력으로 입학한다던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처음에는 다 그렇다.
어떤 나라든 근대화 초입에는 교육제도 정비를 위해서는 무리를 해야 하고,
그렇게 때문에 상당기간 이름 뿐인 엉터리 학교들로 제도를 꾸린다.
따지고 보면 20세기 중반 이후 한국이 독립한 후
이 땅에 들어선 그 많은 학교들 고등학교, 대학들
전부 다 마찬가지다.
다들 알다시피 70년대 대학은 별명이 "놀고 대학생"이었고,
그 대학도 나라에 돈이 없어 우리 아버지들 소 판돈으로 대학을 운영했으니
그것이 바로 "우골탑"이다.
문제는-.
교육제도가 선순환으로 접어들어 근대화 초석이 되기 위해서는
상당기간 이렇게 엉망이고 자격 미달인 교육제도를
억지로라도 끌어 제대로 된 교육제도로 완성하려는 정부의 "선의의 방조"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것을 "자격미달"이라던가,
"능력이 안된다"고 교육제도의 개선을 방치하는 것은
선의의 정부가 아니며,
그 정부 통치의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1945년 해방될 당시까지도
대학은 한 개,
그리고 대학에 들어갈 고등학교 과정이 딱 한개 (경성제대 예과) 밖에 없었다.
많은 조선인이 무리해서라도 비용을 부담하고
대학을 갈 의향이 있었는데도 여기서 충족이 안 되니
현해탄을 건너 바다 건너에서 대학교육을 받고자 했고
그것도 쉽게 입학이 안 되어 기약없이 예비학교에 등록하고 기다리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일제시대의 교육제도의 발전을
소학교 숫자 늘어난 것으로 계산하는 경우를 보는데,
이는 과거제도를 천년 넘게 유지하고,
19세기 팔자 고치는 것을 식자층 상징인 유학 호를 따내는 것으로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사람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렇게 지체된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의 욕구가
폭발적으로 충족된 시기가 바로 해방 이후였으니,
이때부터 한국인들은 가지고 있던 것 다 팔아 자식교육에 올인했으니
그것이 바로 "우골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