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의해 통제되기 전에 건너 온 양잠
우리는 비단짜기, 양잠 하면
중국에서 국가권력이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막았다는 통념 때문인지
한반도나 일본열도로 양잠과 비단생산이 퍼져 나간 것도
이러한 와중에 늦게 전파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서기 3세기 동아시아를 그린 삼국지 동이전을 보면
한반도는 물론 바다 건너
일본열도까지도 누에를 치고 비단을 짜고 있었다.
이는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로 그리고 일본열도로 비단 생산법이 건너간 것은
국가권력이 그곳의 비단 제조법을 통제하기 이미 이전에 이루어진 것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중국의 신석기시대 이래 그곳 농민들이 농사와 양잠을 병했했듯이
한반도와 일본열도로도 농사와 양잠을 같이한 사람들이 이동했다는 말이다.
농사만 이동한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양잠과 비단 제조는 필자가 보기엔
소나 말 등 대동물은 물론,
닭 등 가금류보다도 먼저 동쪽으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과 소도 없던 일본열도의 3세기에
이미 안정적으로 양잠을 하고 비단을 짜는 모습은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잘 알다시피 양잠과 비단짜기는 누에 키우기부터 실뽑기, 그리고 비단짜기 등
쉽지 않은 다단계 과정을 거쳐야
그나마 한 필 비단을 얻게 되는데
이런 작업이 가능했다는 것은 이미 그 농경사회 수준이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기 3세기의 한국과 일본의 소국 지배자들은 모두 비단옷을 입고 있었을 것이라 짐작하는 바,
이런 모습이 언제 시작되었겠는가를 따져 본다면
역시 한반도 남부는 청동기시대까지도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