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국가는 그냥 오지 않는다

일본에서 메이지시대는 국민국가라고 부른다.
우리도 비록 식민지시대에서 맞이하기는 하지만,
20세기 초반 1910년대에 이미 식민지형 국민국가의 형태가 완연하다.
이 변화가 얼마나 극적인가 하는 것은
삼일운동이 일어난 시점, 1919년에서
불과 200년만 시계를 거꾸로 감아 1719년이 되면
향촌사회에 노비를 수백명씩 거느린 양반들이 즐비한 시기였다.
앞선 글에 김단장께서 양반 하나에 노비 여섯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조선시대 호적을 보면 노비 여섯 정도 거느린 양반이란 사실 양반중에서는 극빈층에 해당한다.
18세기 초반만 해도 동네마다 수백명의 노비를 거느린 대농장 소유자가 수도 없었던 탓이다.
한 사회가 소수의 지배층과 빈약한 평민,
그리고 다수의 노비=노예가 존재하는 사회가 어떻게 그 전체를 하나의 국민국가로 볼수 있겠는가.
따라서 한국사회가 국민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선결해야 하는 작업은 국민국가의 성립을 방해하는 강고한 신분제,
이를 안에서부터 해체하는 작업이 정말 중요했다 할 것이다.
20세기 초반,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1700년대 중반 이후부터 200년도 안되는 시기에 노비가 모두 사라지고,
양반층이 붕괴하며 이전에는 양반들로 부터 차별받고 멸시받던 이들이
양반인양 코스프레 하며 격동속에서 신분제도를 무너뜨리고 가던 과정이 그 안에 있다.
한국의 조선 후기사는 이 과정을 파악하고 분석하는데 매우 취약하다.
가장 큰 이유는 조선 후기 조선사회의 적은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 외세에 있다고 하는 민족주의 사관 때문이다.
이사관을 그대로 적용하면, 조선후기 노비 신세를 못면했던 이들도,
외세에 저항하는 반제국주의 운동이 신분 해방보다도 더 중요했던 셈이 되겠다.
이러한 우리 시각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연전에 큰 히트를 쳤던
미스터 선샤인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노비의 자손이다.
그 자신 부모도 양반에게 맞아 죽는다.
간신히 몸만 건져 미국에 가서 군문에 입대, 해병 장교로 조선에 돌아오지만,
그는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점점 "독립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다.
구한말 한국사회의 가장 주요모순은 외세의 침략이라고 하는 시각이 바로 이 드라마에도 있다.
노비로 사회의 바닥에 깔려 사람 대접도 못받던 이들도
외세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에 나서야 한다고 보는 이러한 시각-.
물론 그럴수도 있겠지만,
이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역사-.
조선후기사가 제대로 된 시각에서 조명을 받을 날을 아직 요원하다 하겠다.
노비가 타도해야 할 대상은 제국주의 세력인가, 아니면 신분제도인가?
이에 대한 고민도 허용을 하지 않는 것이 작금의 한국사 체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