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타 통신] 굳은살이 생기지 않는 부러움
한국시간은 이미 어제가 되겠지만 이곳 크레타는 여전히 오늘이라
오늘은 쉬는 날로 정하고선 오후에만 숙소서 가까운 곳으로만 움직였으니 찾은 데가 서너곳이라지만 걸어서 반경 다 십분 이내이며
이라클리오 고고학박물관을 제외하고선 체력 소진이 되는 곳도 아니라서 가볍게 돌고는 일찍 숙소로 돌아왔다.
문제는 저 박물관.
직전 이틀을 거푸 들른 하니아 고고학박물관이 신식 건물로 단장한 신식 박물관인데 견주어 이곳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고 전시 환경도 그닥 좋지 않은 구닥다리 도심건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어
아 우리네 옛날 박물관 같은갑다, 유럽에서는 흔해 빠진 옛날 건물 개조한 그런 덴가 보다 하고 가 보았는데 건물도 위치도 영 갑갑한 그런 데라 관람이 금방 끝나겠지 했지마는 들어서니 웬걸?
아주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런대로 규모를 갖춘 넙데데 단층 건물이라 전시섹션은 6개인가 8개인가로 구성되었으며
전시환경은 틀림없이 쏵 개비한 듯 깔끔하기 짝이 없었고
무엇보다 컬렉션 양과 질이 아테네고고학박물관 응축판을 방불했다.
물론 이곳은 고고학 중심이요 또 크레타라는 섬 자체가 크노스 궁전이 대표하는 미노아문명 본산과 같은 곳이라 이쪽 고고학에 특화해 있었다.
개관 운영시간이 요일별 계절별로 달라서 이는 먼저 확인해야 허탕을 줄이어니와
오늘은 오후 1시에 문을 열어 저녁 8시까지 하는 날이다.
관람객은 아주 드글드글해 나 같은 촬영주의자들한테는 아주 좋지 않았으니
하긴 이런 데도 이젠 이골이 나서 들어가자마자 나는 사람들이 없는 마지막 전시실부터 돌기 시작한다.
이것이 여러 모로 편해서 다른 관람객 뒤를 따라가다가는 죽도 밥도 안된다.
나아가 각 전시코너엔 그 마스코트 같거나 혹은 고고학 관련 글에서 자주 소개되는 유물을 집중해서 먼저 찍은 다음 다시금 찬찬히 둘러보면 좋다.
미노아문명과 그 이전 시대 이쪽 유물은 보는 이를 압도한다.
양과 질 모두 그렇다.
이 박물관에서 그것들을 마주하면 숨이 막히고 실은 분통이 터진다.
계속 이야기하지만 고고학으로 박물관이 장사를 해먹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 컬렉션이 왜 부럽지 않겠는가?
이런 일 한두번 겪는 것도 아니며 이젠 이골이 났다지만
아무리 많은 이별을 해도 새로운 이별은 그 상처가 늘 아리듯이 이 부러움은 결코 굳은살이 배기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