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기내 사족과 향촌 사족

신동훈 識 2026. 5. 7.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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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흡. 조선후기 대표적인 벌열 가문 출신이며, 아버지 할아버지는 물론이고 형제들도 다 한 자리씩 했다.

 

앞에 쓴 이야기를 조금 더 써 본다. 

앞에서 기내사족과 향촌 사족 이야기를 적은 바, 

필자가 기내 사족이라고 한다면 서울에 거주지를 두고, 경제적 근거지도 경기도 지역을 벗어나지 않는 이들이다. 

우리가 향촌에 기반을 둔 사족이라고 알고 있는 이들 상당수는 사실 기내사족이었다. 

흔히 기호사족이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기내 사족이 옳다. 

이들은 조선전기에는 앞에서 말한 대로 문화유씨 가정보나 선원계보에 등장하는 인물로 

자기들끼리 혈연관계를 이루며 여말선초부터 성종 이전까지 무쌍의 권력을 누린 사람들이다. 

그 이후 약 백여년간 앞에서 쓴 것 처럼 사림의 대두와 함께 영남 사족들이 중앙에 진출하여 

기내 사족들의 독점이 깨지는 듯 하지만 이내 다시 권력을 독점하여 조선이 망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흔히 우리가 조선 후기에 경화세족이라 부르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다. 

남인 서인 어쩌고 하지만 힘 좀 쓰는 이들은 죄다 경화세족이었다. 

경화세족은 지금은 조선 후기의 사족들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경화세족은 이 시대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성종 이전에는 경화세족의 힘이 더 쎘다.

전부 서울 근교 살면서 왕실과도 혈연관계를 형성하며 권력을 누린 덕분이다. 

이 경화세족은 흔히 말하는 "종가"라는 것이 지금은 거의 없다. 

물론 내부적으로는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큰 기와집에 장독대 놓은 종가가 거의 없다는 말이다. 

이유는 서울이 현대하면서 이들의 집들이 전부 해체되어 재개발 되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조선시대에는 오히려 곁방신세였던 향촌의 세족들, 사족들의 종가가 더 각광을 받게 되었다. 

요즘 조선시대 선비의 고장 하면 내노라 하는 몇몇 지역이 있고, 

거기에는 예외 없이 무슨 무슨 종가집이라 하여 흔적이 여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이들의 시대였던 것으로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앟다는 것은 만성보 만가보 등 조선 후기에 유력 씨족들의 족보만 간추려 놓은 족보만 들쳐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대대로 과거 급제자를 내고 막강한권력을 조선 말기까지 행사한 명문 사족들? 

전부 서울과 근교에 살았다. 

요즘 유명해진 향촌 사족의 몇몇 반가는 굉장해 보이지만, 

소과 급제로 근근히 이어진 경우가 많다. 

이것을 포장하기 위해 나온 이야기가, 

벼슬은 하지 말고 소과 급제로 생원진사까지만 하라고 하는 선대의 유언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누차 이야기 하지만 그 똑똑한 다산이 바보라서 서울 벗어나지 말라고 한 게 아니다. 

필자가 아는 어느 집안은 인조 반정 이후 그 당시 몇 명의 형제 사이에서 나온 후손들이 불과 300년 사이에 대과 급제자만 40-50 명 가까이 배출했다. 

대과 급제자만 그 정도이니 소과급제자는 부지기수이다. 

이들은 전부 서울 살았다. 

조선 후기에 소위 진짜 명문 소리 듣던 이들 집안의 족보를 타고 보면, 대부분 이 정도는 된다. 

대개 이런 집들은 의외로 매스컴을 잘 안타서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족보와 방목을 뒤져보면 깜짝 놀랄 정도의 집들이 서울살던 종족중에 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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