探古의 일필휘지

김규진에다 이완용을 입혀 보니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6. 8.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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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매력>

근대 한국화단의 걸출한 작가이자 미술교육자였던 해강 김규진(1868-1933)은, 1915년 <해강난죽보>란 책을 낸다(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사군자 중 난초와 대나무 그리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목판인쇄로 낸 책으로,

직접 난초와 대나무의 여러 버전을 그림으로 그리고 당대 일류급의 명사들에게 화제를 받아 판각해 찍었다.

그 '명사' 대부분이 일제 침략자와 친일파라는 게 문제지만, 그야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그런데 해강은 이를 음각으로 새겨 찍었다.

옛 탁본이나 법첩 느낌을 주려고 한 모양인데, 이렇다보니 실감은 솔직히 덜 난다.

그래서 한번 원래 그림일 때 모습은 어땠을지, 하나를 골라 재현해보고자 했다.

대상은 천하의 매국노 일당 이완용(1858-1926)과 미야케란 어느 일본인의 화제가 든 '청란'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색반전을 하고, 도장에 인줏빛을 입히고, 잡티를 제거하고,

진짜 화첩마냥 옷을 입히고-사방에 두른 색이 너무 진한 거 아니냐 물을 수 있겠는데, 일제 때는 금박이나 온갖 화려한 무늬가 놓인 천이나 종이를 대는 경우도 많았다.

어쨌건, 얼추 진짜 그림 느낌을 주는 데까진 성공했다.

하지만 먹의 농담 같은 건 재현하지 못했다.

짐작컨대 꽃대와 꽃잎은 그라데이션이 가미된 담묵이었을 것이고, 괴석의 태점도 좀 옅은 빛이었으리라.

그래도 이렇게 바꿔놓고 보니 퍽 재미있다.

이완용은 도장을 하나만 찍었더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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