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김득신 "파적도"와 쇄미록

신동훈 識 2025. 8. 2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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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무심하게 보아 넘긴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 

이 파적도는 쇄미록을 읽고 나면 그 일기를 보고 그린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가오는 느낌이 달라진다. 

먼저 고양이-. 

오희문 일가는 고양이를 원래 길렀다. 

그런데 난리 중에 닭을 키우게 되면서 고양이를 아는 절에 맡긴다. 

닭은 키우면서 살림에 보탬이 되는 듯 하지만 

자주 없어진다.

주변 야생동물들이 종종 잡아 먹어버리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고양이를 괜히 치워버렸다 싶을 것이 

이번에는 쥐 때문에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곡식이고 생선이고 간에 쥐가 다 먹어버리니

오희문은 쥐 때문에 학을 떼고 결국 절로 가서 고양이를 다시 품에 안고 데려온다. 

문제는 그 고양이도 얼마 안 있다가 사라지는 듯. 

오희문은 아마도 호랑이가 물고 가버렸나보다, 라고 체념한다. 

위 장면에서 병아리를 물고 가는 고양이는 현장을 잡혀서 그렇지 

쇄미록에 보면 아침에 일어나 보면 몇 마리 없고, 이런 식이다. 

저 고양이는 굳이 대낮에 주인 앞에서 병아리 사냥을 한 것을 보면

간이 배 밖에 나온 녀석이 틀림없다. 

저 집 닭은 제사상에 올라가거나 

아니면 장마당에 내다 팔아 곡식을 바꾸어 오거나

그것도 아니면 꿩 사냥용 미끼로 사용되거나 했을 것이다. 

닭은 오희문 기록을 보면 닭장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알을 품기 시작하면 시렁 위에 둥지를 만들어 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사람에게 있어 닭은 주요한 단백질원은 아니었고 

요즘의 닭 역할은 꿩이 했으며

꿩은 사람이 아니라 매가 주로 잡았다. 

 
*** [편집자주] ***

 
심심해서 그렸다는 뜻을 지닌 저 파적도破寂圖는 그림 어디에도 화제畵題가 없다. 요새 누군가가 적당히 붙인 명칭일 것이다. 

저게 무슨 파적도야? 웬수 같은 고양이 후려치는 장면이 어찌 파적이란 말인가? 

말 같은 제목을 붙여야 할 것 아닌가?

고양이 원망하는 그림 혹은 이 웬수 같은 고양이놈 정도가 적당하다. 아님 차라리 곰방대 다기능도라 하든가. 

김득신 생몰년을 보면 1604년(선조 37)~1684년(숙종 10)이라 저 무렵이면 이미 담배 재배가 조선에 성행하고 그리하여 곳곳에 골초가 등장할 무렵이다. 

방추차 같은 것이 달린 베틀기계, 혹은 가마니 짜던 틀을 무너뜨리고 병아리를 물어가는 저 고양이도 참 대담하기는 하다.

그 많은 쥐를 받아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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