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꼬장꼬장 꼰대 한문 선생이 본 2023학년도 수능 한문 시험지

세상의 모든 역사 2022. 11. 18.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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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제2외국어 한문 시험지를 풀어봤다.



1번은, 그림과 설명을 보여주고 ‘程門立( )圖’에 들어갈 글자를 찾는 문제인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그림 안에 정답이 쓰여 있다.



2번은, 보기에 주어진 글자에 ‘強-弱’이 있는데, 이건 ‘强-弱’과 다른지 같은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다음 3번 문제에 ‘총획’과 관련한 문제가 나왔는데, 그렇다면 아직도 고교 한문시간에 ‘총획’을 가르친다는 얘긴데, 저 ‘强’과 ‘強’은 총획이 다르지 않나? 모르겠다. 문항간에 약간의 이율배반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고교 한문 교육에서 이제는 총획은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본다.)



6번은, 進退兩難과 難兄難弟의 공통글자 ‘難’을 찾는 문제인데, ‘난형난제’의 정의를 ‘누구를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 하기도 어려움’이라고 하였는데, 저 난형난제는 형제간에서 ‘아우가 워낙 뛰어나서 그런 아우의 형이 되기가 어렵고, 한편으로는 형이 워낙 뛰어나서 그런 형의 아우가 되기 어렵다.’라는 의미. ‘누구를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 하기도 어렵다.’라는 설명문장은 정확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11번은, 맹자에 나오는데, 이 내용은 ‘맹자가 인용한 공자의 말’이다.

惡似而非者 : 惡莠, 恐其亂苗也; 惡佞, 恐其亂義也; 惡利口, 恐其亂信也; 惡鄭聲, 恐其亂樂也; 惡紫, 恐其亂朱也; 惡鄕原, 恐其亂德也.

이 글은 惡似而非者가 타이틀이고, 그 세부항목이 그 뒤의 구절들이다. 즉, 나는 사이비를 싫어하는데, 이것은 이래서 싫어하고, 저것은 저래서 싫어한다..등등...나열한 것.

그런데 지문에서 인용한 글은 “나는 겉으로는 그럴싸하게 보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사람을 미워한다. 강아지풀이 벼 싹과 비슷하여 혼동을 일으키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과 같다. 말재주가 있는 사람을 미워함도 그의 말이 정의롭거나 성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고 하여, 원래의 맹자문장의 구조를 깼다.

말재주 있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그냥 정의롭지 않아서가 아니라, 말이 마치 매우 정의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의롭지 않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다.

번역문이 굳이 원문과 일치할 필요는 없겠으나 그러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원문의 구조와 다르게 번역해서 지문으로 실을 필요는 더더욱 없다.



27번은, 지문을 논어에서 가져왔는데, 논어의 이 구절은, 해석이 분분한 곳이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君子去仁, 惡乎成名.

대개 조선 학자들은 주자의 주석대로 이 경문을 읽었으나, 주자의 주석에 반대한 학자들도 있었다. 하고많은 논어 구절들 가운데 굳이 논란이 되었던 구절을 수능에 출제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고등학교 한문시간에는 이 구절의 뜻을 어떻게 가르치는지 궁금하다.



29번은, 열녀전에서 가져온 지문인데,

孟子之少也, 旣學而歸, 孟母方績, 問曰 : “學所至矣?”
孟子曰 : “自若也.”

여기에 나오는 /問曰 : “學所至矣?”/는 고등학생이 풀이하기에는 최고난도 문형이다. 즉, 기초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이다.

고교생이 풀 정도로 교정하자면, /問學所至 : 배움이 도달한 바에 대해서 물었다./ 또는 /問曰:“學何所至矣?” : 물었다. “배움이 어느 정도 되었느냐?”/ 問曰:學何所至與?/ 정도로 교정해서 출제했어야 한다고 본다. 學所至矣? 만으로는 문법 설명을 하기 어렵다.

출제하신 분들이 고생하셨는데, 쓴소리 같아서 좀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으나, 내년 출제는 이번보다는 더 완성도가 높아졌으면 한다.



****



이상은 내가 만난 가장 꼬장꼬장한 한문선생 박헌순 선생 글인데 전재한다.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문을 가르치고 한문고전을 번역한다.

참고로 저 양반한테 잘못 걸리면 뼈도 못추린다.

 

***

 

저를 박헌순 선생이 상론했다. 

 

가령 이런 것입니다.

논어 ‘리인(里仁)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去也.

이렇게 읽습니다.


부여귀는 시 인지소욕야이나 불이기도로 득지어든 불처야하며,
빈여천은 시 인지소오야이나 불이기도로 득지라도 불거야니라.

위에꺼는 ‘득지어든’이라고 하였고, 아랫것은 ‘득지라도’라고 하였지요.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부귀한 자리에) 거처하지 아니하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도 (빈천한 자리를) 떠나지 아니한다.”


대개 조선 학자들은 위와 같은 뜻으로 번역해서 읽었습니다. 말하자면, “부귀는 정당한 방법으로 온 것이 아니면 내가 부귀 누리는 일을 아니하며, 빈천은 정당한 방법으로 온 것이 아니더라도 일단 우선은 그냥 가난하게 참고 산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저 두 문장은 거의 완전한 대칭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대칭구조인데, 왜 해석은 서로 다르게 해야 하느냐 하는 의문을 품은 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끊어읽습니다.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 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 得之, 不去也.

부여귀는 시 인지소욕야이나 불이기도어든 득지라도 불처야하며,
빈여천은 시 인지소오야이나 불이기도어든 득지라도 불거야니라.

느낌이 다르지요? 이런 뜻입니다.

“부귀는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면 얻을 수 있더라도 그곳에 거처하지 아니하며, 빈천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정당한 방법으로써 떠날 수 (또는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면 떠날 수 있더라도 떠나지 아니한다.”

이런 논란은 정답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다만, 이렇게 논란이 되는 고전자료는 고교 수능에 출제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난형난제라는 말도 많이 쓰죠? 중국 한나라 때에 진식이라는 사람의 아들들 가운데 진원방과 진계방이 있었어요. (이름이 얼른 생각이 안 남) 자를 원방, 계방이라고 지은 것을 보면, 진원방은 장남이고 진계방은 막내일 것같아요.

진원방의 아들 진군과 진계방의 아들 진충이 (야들은 4촌간입니다.) 서로 지들 아버지 자랑을 하다가 결론이 안 났어요. ‘아, 안 되겠다. 할아버지는 잘 아실거야. 우리 할아버지께 여쭤보자.’라고 하고, 진식의 손자 두 녀석이 지 할아버지 진식에게 찾아갔어요. 

‘할아버지! 우리들 아빠들은 할아버지 아들이잖아요. 그러니 할아버지가 제일 잘 아실 거예요. 우리들 아빠 두 사람 중에 누가 더 훌륭해요?’라고 물은 거죠. 할아버지가 골치 아프게 된 거예요. 아들이 둘 다 막상막하로 훌륭한 자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을 편들 수도 없었어요.

할아버지 진식의 대답이 이거죠. “원방은 형이 되기 어렵고 계방은 아우가 되기 어렵다.” 형이 너무 훌륭해서 그런 훌륭한 형에 견주어봤을 때에 아우가 그런 형의 아우가 되기가 어렵다. 난제. 아우가 너무 훌륭해서 그런 훌륭한 아우에 견주어봤을 때에 형이 그런 아우의 형 되기가 어렵다. 난형. 둘다 무지무지 훌륭하다. 이런 말이죠. 

그런데 수능 지문 설명에, “누구를 형이라 하기도 어렵고 아우라 하기도 어려움”이라고 풀이했는데, 이건 일단 이 설명의 뜻을 이해하기도 어려워요. 단순하게 분석해보자면, 어떤 A라는 사람이 있다고 쳐봐요. 그렇다면, “이 A라는 사람은 형이라고 할 수도 없고 동생이라고 할 수도 없다.”라는 말이잖아요. 이게 무슨 말? 그래서 시험 문제는 '완성도'가 참 중요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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