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끼어든 후손 잊어버린 조상

신동훈 識 2026. 1. 11.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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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6년(성종 7년) 간행돼 조선 최초 족보라 일컫는 ‘안동권씨성화보’.

 

우리는 족보의 변개變改라 하면 

후대에 어떤 이유든 끼어든 후손만 생각한다. 

그런데 생각보다 조상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고려사에 나와 있는 인물들 

이 들 중 상당수는 후대의 어떤 문중 족보에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김부식-. 

이 유명한 고려 전기의 문신집안은

무신정변때 극심한 멸종을 당했는지

지금 어떤 집안의 족보에도 김부식과 그 후손은 나와있지 않다. 

김부식을 경주김씨라고 하지만 

정작 경주김씨 족보에는 김부식이 안 보이는 것이다. 

이런 예는 꽤 많이 보여 

고려사에 나오는 사람들 중 분명이 이 집안 사람인데도

정작 그 집안 족보에서는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는 왜 인가 하면, 

우리가 보는 지금의 족보라는 것이 

빨라 봐야 15세기, 

늦으면 17세기나 되어야 계보가 수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이전의 계보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인 집안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직계계보 위주의 단촐한 것들이라,

이 직계 계보에서 조금만 옆으로 가버리면 정보가 망실되어 있는 것이 태반인지라, 

요즘 문중 족보들을 보면 소위 "중시조"라는 존재는 

같은 동족집단이라고 서로간에 인식하는 핏줄들이 서로 모여 가지고 있는 직계 계보를 대조했을 때

서로가 인정할 수 있는 공동조상 중 가장 먼 사람. 

이 사람이 바로 "중시조"가 되겠다. 

그리고 이 계보가 수합되던 시기에 참여한 집안의 직계계보에 들어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리 유명한 인물로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더라도 

정작 그 집안 족보에서는 누락되는 경우가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족보에서 15세기 이전의 계보라는 것은 이처럼 불완전하여 

족보가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어가기 시작한 18세기 이후에는 

이를 근거로 하여 수많은 "별보"를 낳았다. 

별보란 선대의 계보를 잊어버렸다는 동족의 계보로서

이미 확립된 족보의 어디에도 직접 이어붙이지 못하는 사람들을

따로 뒤에 모아 "별보"로 꾸리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별보도 18세기-19세기에나 나타날 뿐으로 

예전에 그 숫자가 만만치 않았던 별보의 사람들은

이제는 전부 족보 어딘가에는 끼어 들어가 있다. 

우리나라 족보라는 것이 그렇다. 

어느 시기인가에 발생하여 변천하고 완성되어 전성기를 맞다가, 

이제 해체기에 들어서는 것이다. 

족보라는 것이 이처럼 흥망성쇠가 있으니

지금 같은 대동보가 언제까지 이대로 유지될 리가 없다. 

우리의 아들 대에는 이 대동보가 해체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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