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낙폭지 또 하나의 용도, 변경 군인들 방한복 재료!

부북일기赴北日記는 다들 알다시피 조선시대 무과 합격자의
북방국경지대 부방赴訪일기다.
이 일기는 현재까지 많이 남아 있지 않은 무과 합격자 일기로 (또 하나는 노상추일기가 있다)
경상도에서 함경도 변경 지역까지 이어지는 여행 경로 모습과,
여진족과 접경한 지역 상황, 출신군관들 근무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하겠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이,
이전에 묵재일기 등지에 많이 나오는 소위 낙폭지落幅紙,
낙폭지가 뭔가 하면 바로 과거 불합격자 시험답안지가 되겠는데,
종이가 귀한 조선시대로선 (앞선 포스팅에서 논을 살 때 종이를 몇 뭉치 끼워서 대금을 치르는 것을 보았다)
낙방시험지도 버리지 않고 이리 저리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 시험지를 가져다 빈칸을 오려 쓰기도 하고,
그것도 어려우면 폐지를 모아 다시 종이를 떠낼 때 합쳐 쓰기도 했으니,
사족들이 종이를 얼마나 필요로 했고 어떻게 조달하고 재활용했는지 알 수 있겠다.
뭐 사실 필자만 해도 어린 시절 국민학교 중학교 때까지도 종이가 귀해서,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누런 갱지를 한 장에 얼마씩 학생들에게 팔았다.
열 장 주세요, 하면 문방구 주인 아저씨가 갱지를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면
마치 돈처럼 부채처럼 쫙 펴지면 거기서 열장을 세어 팔았으니,
그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부북일기를 보면, 이 낙폭지를 사족들에게 나눠주는 게 아니라,
토착군관들에게 나누어 주는 장면이 나온다.
토착군관이라면 출신군관과 달라서 무과급제가가 아니니,
종이가 그다지 필요 없을 것 같은데 왜 이들에게 낙폭지를 나누어 주었을까?
바로 이 지역이 너무 춥기 때문이다.
이렇게 받은 낙폭지를 이들은 잘 구기고 부푸러기를 만들어
옷안에 넣고 방한용으로 썼다는 것이다.
종이 한 장도 필사적으로 아껴야 했던 당시 사정을 잘 알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찍어낸 면수가 16만 면을 넘었을 팔만대장경은 (앞뒤에 면이 있으므로)
과연 다 조판 한 후에 도대체 몇 번이나 찍어냈을까?
조선시대 목판을 보면, 논어 맹자 통감 등 자주 보아 자주 찍어내야 했던 것들은
글자가 뭉개져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는 것을 보는데,
그렇게 치면 팔만대장경-. 지금 8백년이 지난 인류의 대업적인 목판 팔만장인데,
너무 조각면이 깨끗하지 않나?
종이의 분량이나 뭐로 보나, 팔만대장경, 많이 찍어내지 못했으리라 필자가 추정해보는 이유다.
*** 편집자주 ***
필자가 궁금해하는 인쇄 문제는 외우 이혜은 숙명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의 훌륭한 연구가 있다.
그미 석사학위 논문이 그것이라 과연 몇 질을 찍어냈느냐다.
팔만대장경?
한 번 전질 찍어내면 나라 살림이 거덜난다. 최대 50부인가로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