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도는 시대와 상관없이 부활한다

아래 김단장께서 포스팅한 아프리카 노예제 이야기에 조금 붙인다.
우리 젊은 시대에 풍미했던 막시즘 경제사학의 영향 때문에
노예제도에 기반한 고대
농노제도에 기반한 중세
근세 (early modern)의 자본주의 맹아
산업혁명으로 노동자 형성
등등 단계를 밟아 가는 것이 보편적 인류사라는 생각이 우리 머리 속에 강하게 남아 있다.
이중 노예제도에 기반한 고대라는 것은 한 번 다시 생각해 볼 만한 것이
노예제도라는 것이 과연 고대에만 나오는 것인가,
고대가 아닌 후대에 노예제도가 유지된다면 그것은 후진성의 상징인가,
자본주의와 노예제도는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
혹은 중세에는 노예제도가 나올 수 없는가 등등 생각을 해 보면,
인류사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노예제도에 준하는 인신의 구속 상태가 없다고 할 수 없는 것이며
21세기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의 한 톱니바퀴로 지금도 지구 어느 한 구석에는 엄연히 노예제도가 온존하여 작동하고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예제도가 고대에만 존재했다면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남부 플랜테이션은 어찌 볼 것인가.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끌려와 한 군데 수용된 사람들이 혈연적으로 전혀 무관한 상태에서 살아가
또 갈갈이 찢겨 나누어 팔려 나가는 모습을 유전분석과 안정동위원소로 확인했다 하거니와,
조선시대 역시 노비들의 경우, 독립적 가족이 극히 불안정한 상태에서 제한적으로 인정되었던 점.
필요하면 가족을 해체하여 한 명씩 팔아 버리기도 했던 점 등을 고려하면,
조선시대 노비에 기반한 시스템은 미국 남부에 준하는 노비 사역 농장을 바탕으로 한 노예제도가 온존한 사회였다 할 것이다.
이 노예제도가 도대체 왜 조선사회에서 유지되어 내려왔던가를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학자들의 몫이지
뻔한 노예제도의 특성을 무시하고 왜 조선시대의 노비제는 노예제도가 아닌가 하는 것을 어거지로 증명했다고 우기는 것이 학자들이 할 일이겠는가.
DNA 분석 통해 드러난 사우스캐롤라이나 공동묘지에 묻힌 노예들 출신지
https://historylibrary.net/entry/Enslaved-people-colonial-cemetery
DNA 분석 통해 드러난 사우스캐롤라이나 공동묘지에 묻힌 노예들 출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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