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도 팔팔한 그대가 부럽구려, 친구 허백당虛白堂 성현成俔이 증언하는 유자광柳子光
장난삼아 부사 유 우후 자광에게 주다〔戲呈副使柳于後 子光〕
성현成俔(1439~1504), 《허백당집虛白堂集》 <허백당시집虛白堂集詩集> 제13권 시詩
호탕한 기운 온 천지 뒤덮고 / 豪氣堂堂蓋八埏
일찍 공 세워 능연각 들었네 / 早年功業畫凌煙
삼백근 활 손수 당겨 겨누고 / 手挽弓滿斤三百
붓 들면 바로 시 만편 이르네 / 筆落詩成首十千
기자땅 잔치판 다시 얼굴 대하니 / 箕壤笙歌重會面
연산 눈보라 뚫고 다시 입조하네 / 燕山風雪再朝天
부럽구려 그대 기력 아직 팔팔해 / 羡君氣力猶强健
자주 옷깃 당겨 비단자리 더럽히네 / 屢把衣裳衊錦筵
[주-D001] 유우후柳于後 : 유자광柳子光(1439~1512)은 본관은 영광(靈光), 자는 우후이다. 건춘문建春門을 지키던 갑사甲士로 이시애李施愛 난이 일어나자 자원 종군하여 세조에게 발탁되었으며, 예종 대에 공신으로 녹훈되고 무령군武寧君에 봉해졌다. 뒤에 연산군 때에는 사화를 일으켜 사림 세력을 제거하고 권력을 잡았다.
[주-D002] 八 : 대본에는 ‘入’으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에 의거하여 바로잡았다.
[주-D003] 능연각凌煙閣에 들어갔지 : 공신으로 녹훈되었다는 뜻으로, 당 태종이 정관貞觀 17년(643)에 훈신勳臣 24명 초상화를 그려서 능연각에 걸어 놓게 하였던 데서 나온 말이다.(《新唐書 卷2 太宗皇帝本紀》) 유자광이 1468년 예종이 즉위한 후 익대공신翊戴功臣 1등에 녹훈되고 무령군에 봉해진 일을 말한다.
ⓒ 한국고전번역원 | 조순희 (역) | 2011
내용으로 보아 유자광이 조천사朝天使 일원으로 북경에 가는 길에 아마도 평안도감사 재직 중이었을 성현이 평양에서 기생 불러다 잔칫판 벌여 환송연 열며 지은 시가 아닌가 한다. 그 좋다는 평안감사가 베푼 주연이니 오죽 화려했겠는가?
연산은 중국 사행길 지나는 고개요, 눈보라라 했으니 겨울인갑다. 동지사 일행 아닌가 모르겠다.
제목에 장난임을 표시함으로써 이 시가 개그임을 전제했으니 요새 표식으로는 친구 유자광한테 주노라 ㅋㅋㅋ 정도에 해당한다.
두 사람은 워낙 가까워서 저걸 토대로 유자광을 볼 수는 없다.
다만 유자광이 시를 엄청나게 썼고 달필이며 늙어서까지 건강이 아주 좋고 여자를 밝힌 호색한이었음을 본다.
이 시 묘미는 衊이라는 한 글자에 있다. 이 글자를 옥편 같은 데서 일컫기를 더럽힐 멸이라 한다. 하도 주연에서 기생들, 것도 이쁜 기생만 골라 집적대고, 짙은 농을 해대는 통에 자리가 어지럽다는 뜻이다.
더구나 그 자리가 금연錦筵, 비단 자리 깔았다니 말이다.
기생들한테 추근대며 킥킥하는 두 사람 표정이 선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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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을 검색하니 아래가 보인다. 아마도 이때 일이 아닌가 한다. 이 무렵 성현은 평안도관찰사 재직 중이었으니 맞을 것이다.
성종실록 196권, 성종 17년(1486) 10월 21일 임진 1번째기사
무령군武靈君 유자광柳子光·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이계동李季仝을 보내어 표문表文·전문箋文을 받들고 북경北京에 가서 정조正朝를 축하하게 하였는데, 임금이 백관百官을 거느리고 표문·전문에 배례拜禮하기를 의식대로 하였다. 통사通事 김맹경金孟敬을 보내어 사로잡혔다가 도망하여 온 중국인 왕유석王劉石을 안동하여 요동遼東으로 보내게 하였다. 유자광이 떠나려 할 때에 아뢰기를,
"듣건대 중국에는 달자達子의 성식聲息이 있다 하는데, 신들의 호송군護送軍은 1백 명뿐이므로 혹 사변이 있으면 방어하기 어렵겠으니, 평안도 강변江邊의 유방군留防軍 중에서 날쌘 자 30명을 뽑아 데려가기를 청합니다."
하니, 전교傳敎하기를,
"20명을 뽑아 데려가도록 하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