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과 연려실, 태사공, 그리고 명함첩
다산과 연려실, 태사공이 만약
귀양 가지 않고 평생 초야잠필로 늙어가지 않고
치욕적 거세를 당해 은둔하지 않았다면
이 양반들이 과연 그 방대한 저작과 연려실기술, 사기 같은 대작을 남겼을까.
연구와 저작은 절반은 창조, 나머지 절반은 침잠 속에서 결정화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창조가 밝은 부분이라면 침잠 속의 결정화는 박명 속에서 힘들게 이루어진다.
써 놓은 것을 퇴고하는 작업은 아무리 그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힘겨운 일이다.
자신이 그 일을 좋아하는가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학문을 하고 연구를 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혼자서 퇴고해야 하는 힘든 작업이 반드시 따라 온다는 말이다.
이 작업을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대학에 남아서는 안 된다.
밖으로 떠도는 사람들은 학문으로 절대로 대성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두꺼운 명함첩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연구를 한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흔히 대가들 일화 중 항상 정해진 작업의 루틴에 대한 일화가 많은 것은 그런 이유다.
자신이 하는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그 이외 일은 전부 익숙한 과정만 남겨 놓는 것이다.
그런 일에 신경을 쓰기가 싫은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떻게 장차관에 기관장을 하라고 하겠는가.
새로 학문을 시작하는 분들에게 한 가지 조언한다면
명함첩과 학문은 절대로 공존할수 없다는 점이다.
명함첩이 인생에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인생을 살겠다면 대학에 남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본인을 위해서 뿐 아니라 그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다.
명심하자.
명함첩은 공부와 학문, 연구의 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