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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 완전한 신분해방을 전제로 한 근대의 산물

신동훈 識 2025. 8. 3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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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족보, 대동보를 케케묵은 과거의 유산 

조선시대의 고물 정도로 생각하지만

족보 중 요즘 보급된 대동보는 

과거의 고물이 아니라 그야말로 근대적 산물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썼지만 우리는 동성 친족집단 하면

같은 조상 모시고 제사 지내고 제사 후에는 음식 나눠 먹으며 음복하는 
형제 친척 정도로 생각하지만 

조선시대에 동성친족 집단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앞에서도 썼지만, 조선시대는 한번 조상 중에 서자가 끼면 

(얼자, 즉 어머니가 천민인 경우에는 이것도 안되었다)

그 후손 전체가 금고 되어버리는 지라 

과거 합격 자체가 되지를 않으니 (물론 19세기 이전 상황이다)

한 마을에 동성집단이 있다 한들 

그 안에는 적자 후손인 집과 

서자 후손인 집이 공존하며

서자 후손인 경우 결코 적자후손과 대등할 수 없음은

19세기 이전 호적을 보면 역력히 드러난다. 

물론 호적이 좀 느슨해진다 싶을 때는 서자 후손이라도 유학을 칭하므로 구별이 쉽지 않은데 

조금만 빡세게 해버리면 직역이 구분되어 쓰여져 있기 때문에 

서자 후손의 경우에는 호적에서 유학 아래의 업무, 업유로 기재되며 

서원 출입이 쉽지 않고 청금록에는 들기 어려웠던 까닭이다. 

지금 집집마다 있는 대동보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미 적서구별이 거의 불가능하며 

그 안에는 서자 후손 뿐 아니라 얼자 후손까지도 대등하게 적혀 있음이 틀림없는 것이므로

이 대동보 자체가 이미 그야말로 신분 해방 이후의 근대적 산물이라 할 것이다. 

이 시기 이전의 족보를 보면 대동보와 차이가 있어 

대동보에는 들어 있는 자손들이 이전 족보에는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족보를 사서 들어간 경우도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그보다는 근대적 대동보 출현 이전에는 이런 저런 이유로 족보에 못 들어간 이들이 

새롭게 편입되어 들어갔다는 편이 차라리 더 옳지 않을까 한다. 

현재 보급된 각 문중의 대동보는 그 출현 동기와 보급 과정이 흥미로운 바가 많은데

아직 제대로 된 연구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이 대동보를 이전의 족보의 연장선상에서 보기 때문에 연구가 많지 않은 것 같은데, 

대동보의 출현이 그야말로 근대적 사건이라

조금 시각을 달리하여 이를 조명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다. 

 

*** [편집자주] ***

 

대동보가 출현하기 위한 절대조건은 신분해방, 그것도 완전한 신분해방이다. 

왜 대동보 출현 시기가 식민지시대에 집중하는가?

법적인 신분해방은 갑오개혁이라 하지만, 그것을 실질로 받침한 신분해방은 식민지시대 개막과 더불어 전개되는 까닭이다. 

이때가 되어서 비로소 소 팔아 사업 일으키는 정주영이 등장한다. 

완전하고 불가역 신분해방이 식민지시대에 이뤄졌다고 하면 그렇다면 일제가 잘했다는 거냐 쌍심지 켜는 놈들부터 잡아 족쳐야 한다. 

역사는 도덕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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