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대원군이~에필로그

신동훈 識 2026. 5. 2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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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대한민국은 향촌중인, 모칭유학, 서자 들이 세운 나라라 하였다. 

필자는 동학혁명도 이들이 주동이 되었다는 강한 심증이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길게 쓰지 않겠다. 

다만 우리나라는 21세기가 되어서도 자기 조상은 모두 양반, 

우리는 원래 양반이었지만 몰락해서 아무것이 없이 새로 시작한 집안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국민의 99프로인 덕에

(나는 자기 조상이 평민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도 본 적이 없고, 중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본적이 없다)

19세기의 상황을 정확히 20세기와 연결화여 보는데 매우 취약하다. 

필자가 단언컨대, 구한말부터 20세기를 거쳐 21세기까지 대한민국에서 활발히 활동한 이들의 

상당수는 향촌중인, 모칭유학, 서자들의 후손이며, 

이들은 지금 대한민국 사회 각계에 명문 집안, 거부, 고급 공무원의 모습으로 숨어 있는 것이다. 

필자가 딱 몇 가지 이야기만 더 남기고 글을 마치겠다. 

옆나라 일본의 이야기다. 일본의 경우가 이럴진대, 과연 우리나라는 전부 양반 후손이겠는가, 

대한민국은 양반 후손들이 세웠겠는가, 한번은 생각을 해볼수 있었으면 한다. 
 
이토 히로부미: 메이지유신 이후 초대 총리. 원래 농민 집안으로 아버지대에 무사 자격을 얻었는데 그 지위가 아시가루였다.

아시가루는 사무라이 최 말단계급으로, 말이 좋아 사무라이지, 사무라이라고 할수도 없다. 

후쿠자와 유키치: 사무라이 출신이지만, 아버지는 하급무사로 시골 번의 창고지기. 후쿠자와 유키치는 이 때문에 에도시대 번벌제도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아버지는 한평생 유학자로 근신하며 공부하고 살았지만, 하급무사라는 신분 때문에 항상 천대받고 살았다는 것. 

이와사키 야타로: 미쓰비시의 창립자. 원래 하큽무사였다는데 이 사람의 증조부때에 그나마 그것도 팔아 먹고 지하낭인 신분이 되었다.

말이 좋아 지하낭인이지 이때 지하낭인은 거지나 다름 없다.

메이지 유신 후 미쓰비시를 일으킨다. 

오쿠보 도시미치: 사쓰마 번의 하급무사 출신. 메이지 유신 후 일가가 화족이 된다. 

그 외 부지기수이다.

메이지 유신은 이들 하급 무사들이 이룬 혁명으로, 에도시대 번성하던 고급 무사들은 그 질록을 그대로 누린 이들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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