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도전의 시대 1920년대... 말로리와 에베레스트

신동훈 識 2025. 9. 1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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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등정은 힐라리와 텐징의 1953년 초등이 가장 유명하지만, 

사실 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에 대한 등정 시도는

1920년대에 이미 본격화했다. 

20년대 산악 등정의 대표 주자 격이었던 말로리는 

1920년대 영국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이끌었다. 

에베레스트


1921년, 1922년, 1924년 세 번의 에베레스트 원정을 했는데

모두 실패하고 마지막 원정인 1924년 

조난하여 에베레스트에서 사망하였다. 

말로리가 죽기 전 에베레스트 등정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등정하고 하산 길에 조난했다는 주장도 있고, 

등정에 실패하고 조난했다는 설도 있다. 

그의 시신은 2007년이 되어서야 발견되었다. 

시신이 발견 된 후에도 그의 등정 여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는 "산이 거기 있기 때문에 오른다"라는 말을 남긴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이런 고산 등정 소식은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은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신문에는 이 영국 발 에베레스트 등정 소식이 자주 전해졌다 (1924년 6월). 


위 기사는 말로리의 사고 직후 뉴스인 것으로 보이는데, 

말로리의 이름은 적시되지 않고 있다. 

말로리가 에베레스트에서 실종된 것이 6월의 일이라, 

위 기사에서 죽었다는 2인은 말로리와 어빙이다. 

아무튼 이런 소식에 계속 자극받은 조선인들 사이에도

1940년대가 되면 산악운동이 시작된다. 

해방 이전 "조선산악회"는 일본인들이 1930년대에 조직한 산악회로

조선인들은 이 조직에 참여하지 않고 1940년대에 별도의 산악회를 만들었다. 

 

***

 

저때 저리 식민지 조선을 타전한 등반 낙오자 시신 혹은 그 직접 흔적이 최근에서야 발견됐다는 사실이 묘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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