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많이 들어가는 무과급제

대개 우리나라 역사학은
사족들의 글만 읽다 보니 눈이 머리 꼭대기에 달려있어
조선후기 양반들이 대과 급제는 기본이요
소과 급제정도는 해야 되고
무과는 과거도 아니라는 뉘앙스의 글을 자주 보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조선후기 들어오면 사족들은 호적상 점점 늘어나고,
이들은 어떻게든 급제 출신으로 정말 제대로 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자들이 도처에 널려 있었는데
과거 급제는 숫자가 뻔해서
아무리 별시 증광시가 있다 해도 문과급제는 언감생심
한 번에 백명씩 뽑는 진사 생원도 쉽지 않아
족보들을 유심히 보면 촌 동네 사족들은 소과 급제자도 매우 드물다.
향촌에서 진사의 파워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호적에 유학이라고만 적혀도 17,18세기에 그 파워란 무시 못하는 것인데,
진사 입격에 출신까지 떡 적히면,
향촌에서 그 힘이란 대단하다는 뜻이다.
아니, 소과가 문제가 아니라 무과만 붙어도
족보에는 급제라 딱 적어 놓는다.
무슨 과거 급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급제라고 적혀 있다면
이것이 날조가 아닌 한은 전부 무과 급제를 뜻한다.
대과는 당연히 족보에 찬란히 적어놓고
소과만 해도 당당히 적는데
무슨 과거인지 적어놓지 않고 돌연 급제라면 당연히 무과급제일 수 밖에 없다.
그런데
향촌에서 무과는 쉬웠느냐
천만의 말씀.
촌동네에서는 무과급제도 쉽지 않아
무과 한번 급제하려면 기둥 뿌리가 뽑혔다.
기본적으로 먹고 살만한 촌동네 사족들이 응시하는게 무과라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받쳐줘야 무과도 급제자가 나오지,
몰락 사족들은 무과도 볼수 없었던 이들이 바글 바글 했다.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조선후기 역사의 기술은
글쓴이들의 시야가 너무 높은데 고정되어 있다.
대과 급제자들의 글만 보다 보니
우리나라 기본적으로 대과급제는 못하더라도 소과는 해야 사족이라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촌동네 보면 대과 소과 급제 못해도 무과라도 간신히 하면서
혹은 그것도 없이 악으로 깡으로 버티는 미천한 사족들이 드물지 않았다.
이들을 뭐라고 부를 것인지,
향촌 중인? 혹은 잔반? 몰락양반?
뭐라고 부를것이지는 모르곘지만,
시각을 위에서 내려보는것이 아니라
촌동네 마을에서 위로 올려다 보면
무과 급제자만해도 아득히 먼 위에서 놀던 사람들이었다,
그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