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훈 識 2025. 12. 2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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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은 그 혁명가로서의 호불호를 떠나

냉정하게 세계사 흐름을 판단하는 학자로서 평가한다고 해도 

최일급 인물에 해당한다. 

레닌의 천재성 중에 그의 제국주의론이 있는데 

일언이폐지하고 한마디로 이야기를 하자면 

제국주의가 무너질 때는 가장 약한 고리인 식민지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 좌파의 역사발전에 대한 인식을 뒤집어 놓은 것으로

현상에 대한 관찰에서 입론까지 이르는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 하겠다. 

요는 역시-. 

가장 강고한 구체제 중심지의 붕괴는 가장 늦고, 

이러한 구체제에서 먼 지역일수록 그 붕괴는 빠르다는 것인데, 

따지고 보면 이는 꼭 레닌이 예언한 자본주의-제국주의 붕괴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일본의 경우에도 메이지 유신기, 260년간 이어져 오던 에도 막부가 무너질 당시

그 시작은 가장 약한 고리인 변방 중의 변방 조슈와 사쓰마에서 시작하였으니, 

이는 어느 정도 범용성과 보편성을 갖춘 이야기라 하겠다. 
 


각설하고-. 

조선시대에는 앞에서 계속 이야기한 대로, 

18세기까지도 한국은 강고한 노비노역에 기반한 

양반들의 농장 운영에 놓여 있었는데, 

이러한 흐름이 100년만에 노비 수가 급속히 줄고, 소위 말하는 모칭 유학자들이 늘어나 

19세기 중반이 되면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었는 바, 

이 와중에도 동네에 따라 이전부터 수백 명 노비를 거느리고 사역시키며 자신들의 부를 유지한 일부 양반가는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백 명이 넘는 노비를 데리고 있는 집들이 있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이냐 하면, 

레닌이 갈파했듯이, 

앙샹레짐-구체제 붕괴는 약한 고리부터 시작되니, 

강한 권력의 양반이 없는 동네일수록

한심하기 짝이 없는 조선왕국의 시스템은 더 빨리 무너지고 잇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반대로, 양반들이 많이 모여사는 동네일수록 

이러한 시스템의 붕괴가 더뎌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노비 사역을 시키고 있었을 가능성을 웅변하는 것이니, 

이 말은 무슨 말이냐, 

우리 동네는 양반 고을이라는 자랑을 함부로 할 만 한 것이 못 되니, 

양반고을이라는 이야기가 곧 그 동네 사람 모두가 양반이라는 소리가 아니라, 

많은 양반의 존재는 결국 더 많은 노비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니, 

양반 고을이라는 것은 결국 노비고을이기도 했다는 말이 되겠다. 

노비 없이는 양반도 없다.

이것이 조선이었기 때문이다. 

 
*** [편집자주] ***
 
흔히 하는 말로 안동을 양반의 마을이라 하지만, 이를 냉소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 
 
"노비가 제일 많은 동네"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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