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퇴와 그 이웃-122] 배회하는 돼지
김단장께서 놔서 기르면 하루종일 돌아다니다
저녁 때면 집으로 돌아오는 닭 이야기를 쓰셨는데,
이것은 사실 돼지도 그렇다.
우리는 돼지라는 것을 우리에 가둬 키우는 것만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에 가둬 키우는 돼지는 과거에는 그다지 흔하지 않았고
세계적으로 볼 때 놔서 기르는 돼지가 훨씬 많았다.
당장 동아시아만 봐도 황하유역에는 일찍부터 돼지를 가둬 키웠는데
반대로 양자강 유역은 돼지를 놔서 키웠다.
이 때문에 양자강 유역의 돼지는 사육돼지의 특징보다 야생종 멧돼지의 특징을 더 많이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
왜 놔서 길렀을까?
바로 주변에 황무지가 많아 놔서 키워도 알아서 줏어 먹고 들어오고,
인구밀도가 높지 않아 놔서 키워도 별 문제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 황하유역은 일찍부터 인구밀도가 높아 상당히 이른 시기부터 돼지는 가둬 키웠던 것이다.
유럽은 어떨까?
유럽은 중세까지도 돼지는 놔서 키웠다.
이 때문에 파리나 런던등 당시로서 굴지의 대도시에도
길바닥을 배회하는 돼지 천지였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사라진 것은 산업화가 시작된 후로
인구가 급증하고 인구밀집지역이 늘어 돼지를 놔서 키우지 못하게 되면서
돼지를 가둬 키우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보면 돼지를 가둬 키우기 시작한 것은 유럽에서는 그다지 오래된 일이 아닌 셈이다.
바로 이 시기에 중국산 돼지가 많이 수입되어 유럽 돼지와 교배하여
중국돼지의 형질이 유럽돼지에 녹아 들어갔는데,
유럽에서 중국돼지를 많이 수입해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국돼지는 가둬 키우는데 익숙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마왕퇴의 밥상에는 돼지고기도 올라가 있는데
이 시대가 되면 장사 인근도 돼지는 가둬 키우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