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 이야기/마왕퇴와 전국 초묘 미라

[마왕퇴와 그 이웃 5] 중국의 핵 방공호

초야잠필 2025. 2. 23.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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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발발한 중소국경분쟁 여파로 소련이 핵전쟁까지 들고 나오자 

당장 급한 쪽은 중국이었다. 

당시 중국은 핵은 있었지만 투하 수단이 마땅치 않았고 

소련은 아직 미국과 함께 전 세계를 양분한 초강대국으로 양국간 핵전쟁이 발발하면 그 결과는 뻔했기 때문이다. 

마왕퇴에 대해 쓴 책을 보면 항상 가장 앞에 두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첫째는 마왕퇴를 발견한 계기가 된 방공호를 파던 이야기.

두 번째는 임표의 비행기가 추락해서 사망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에 대개 이를 건너 뛰고 이해하게 되는데 

사실 이 두 사건은 마왕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건인 문화혁명이나 미중 데탕트와도 관련이 있다. 

중국이 소련의 핵공격에 대한 위협이 1969년 나오자 가장 먼저 서두른 것은 핵방공호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 핵방공호는 우리의 경우에는 재래식 무기 빌드업에도 바빠 거의 시도하지 않고 넘어갔지만 

미국과 소련간 냉전이 격화한 무렵에는 미국에서도 민간인을 위한 핵방공호까지 꽤 만들어졌다고 한다. 

냉전시기 미국에서 설계되고 만들어졌었다는 핵방공호.

소련의 핵공격 위협에 직면한 중국은 1969년부터 핵방공호 건설을 서두르게 되는데 

먼저 중국 지휘부의 보호를 위해 거대한 핵방공호를 만들게 되니

이른바 131 지하공정이라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이렇다. 

호북성 지하에 거대한 핵방공호를 만들어 인민해방군 지휘부가 벙커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 핵방어용 벙커 건설계획은 1971년까지도 계속되었고 

현재는 관광명소로 외부 공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인민해방군의 핵전쟁 벙커가 건설된 곳. 우한시와 창사시 사이에 만들어졌고 마왕퇴가 발견된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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